shoot ur luv

2021. 2. 6. 11:00

백열등의 기분 나쁜 쨍함이 깔짝깔짝 신경 쓰였다. 요즘 누가 LED도 아니고 저런 백열전구를 쓴다고. 뻑뻑한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평소에 잘만 끼고 다니던 콘택트렌즈가 안구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부터 눈이 불편하다. 깜박거리던 전구는 이내 서서히 힘을 잃는다. 톡톡 소리를 내더니 필라멘트에 벌건 불꽃이 튄다. 윤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유리 안의 가는 금속 선을 바라본다. 서랍장 깊은 곳의 총을 꺼내 저 거슬리는 백열등을 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굳이 그런 짓을 하진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저 필라멘트는 곧 끊어질 것이다.





shoot ur luv
김석진 민윤기











사랑한다는 말로 어디까지 날로 처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하기엔 민윤기 병신 호구 새끼는 이미 너무 많은 걸 내줬다. 모르지 않았다. 그치만 어쩌겠는가 저 자신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민윤기는 김석진을 사랑했다. 그것도 대가리는 돌아버리고 눈깔에는 뵈는 게 없을 만큼.


"형 회사 때려처요. 내일부터 나가지 마요."

윤기의 말에 석진이 손에 와인잔을 살살 흔들며 웃었다. 살풋 웃는 얼굴이 민윤기가 약한 딱 그 얼굴이었다. 민윤기는 기가 막혀 웃었다. 이제는 이런 말도 우습다 이거지 시발.

"윤기야 내가 없으면 니가 거기가서 혼자 뭘 할 수 있는데."

석진의 말에 윤기가 고기를 썰던 나이프를 내려놨다. 뭘 할 수 있느냐니. 사람을 이렇게까지 깔아뭉갠다고? 지금 상처받으면 안 됐다. 이건 더이상 연애놀음이 아니었다. 주도권을 놓치면 안 된다. 김석진이 아가리를 시커멓게 벌리고 언제든지 모든 걸 삼킬 준비가 된 채로 민윤기 앞에 대등하게 앉아있었다. 민윤기는 최대한 비열하게 웃어본다. 다리를 꼬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무의식중에 손톱을 물어뜯으러 올라간 손에 힘을 주고 입가를 살짝 가렸다.

"형 정신 좀 차려요. 나 없으면 진짜 좆도 아니잖아요."

석진이 분주히 움직이던 포크와 나이프를 멈춘다. 도톰한 아랫입술이 말려 올라간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학습한 비웃음이 둘의 얼굴에 똑같이 자리 잡는다. 민윤기가 석진의 표정을 확인하곤 느리게 눈을 감았다. 피곤하고 짜증 났다. 안구가 아렸다. 다행스럽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서랍장의 작은 총을 생각했다. 그걸 꺼내 쏴버릴까. 그게 뭐든 말이다.







뭣도 없던 김석진이 처음 이 집안에 발을 들인 건 10년 전이었다. 당시 낙하산으로 이사 자리에 취직한 큰형의 운전기사였던 석진은 그 반반한 얼굴이 아니라면 그닥 튀는 인간은 아니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이긴 했지만 이 빡빡한 집안에서 그의 사회성이나 친화력을 발휘할 일은 거의 없었기에 내가 형을 눈에 담기 시작한 건 명백히 우연이었다. 분명 거기까진 우연이 맞았다. 하지만 그 후는, 이제야 추측건대 단 한 톨의 우연도 없었다. 어쩌면 김석진은 애초부터 이러려고 이 집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민윤기 이 멍청한 새끼는 우울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에 불과했고 김석진은 비록 그의 외관만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여튼 세상의 별 좆같은 면을 다 본 인간이었으니 원하는 말을 해주고 살살 꼬드겨 내기란 쉬웠을 테다. 안아주고 키스해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고. 그리고 나도 몰랐는데 나는 생각보다 존심도 없는 인간이었기에 그 뒤로 김석진이 어떤 사탕 발린 말로 멍청한 도련님을 꼬드겨 원하는 자리에 올라갔는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우리의 그 별거 없는 역사가 어언 10년이었고 그쯤 되니 이 배은망덕한 새끼는 생각했을 것이다. 굳이 민윤기기 필요한가?


그동안 애써 잘게 잘게 분쇄했던 생각들이 요즘 들어 자주 석진의 셔츠에 배어온 달큰한 향수 냄새와 함께 제 모습을 갖춰 민윤기 대가리를 후려쳤다. 쟤는 너 안 사랑해.

민윤기가 생각보다 쿨한 타입이라 그냥 김석진이 선을 보고 다니든 연애를 하든 혹은 결혼은 하든 대충 넘어가고 대체재나 찾으면 좋았으련만. 미안한데 아니 시발 사실 좆도 안 미안한데 그럴 거면 잘못 골랐다. 그럴 거면 그때 발칙하고 어린 김석진이 꼬신 게 민윤기여서는 안됐다. 나였으면 안됐다고.



김석진 니가 너무 싫었다. 너를 내 인생에서 깨끗이 도려내고 싶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 너랑 함께여서 행복했던 기억들이 너무너무……. 불쌍해 단 한 순간도 추억 거리 따위로 둘 수가 없어 내가 너무 창피하고 니가 너무 좆같아. 근데 그럼 그냥 안 보이게 치워버리면 그만인데. 그게 안 됐다. 김석진이 나 없는 어디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 맞대고 살 생각을 하니 등이 따끔따끔하고 식은땀이 났다. 역겹도록 독한 소유욕이 온몸에서 펄펄 끓었다. 그게 민윤기 온몸을 달궈놔 김석진 생각 말곤 모든 다른 사고를 차단하고 민윤기를 병신으로 만들었다. 정말이지 이런 건 그만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민윤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 좀 봐달라고 형 널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고 너한테 이렇게까지 내준다고 정신 놓고 퍼주다 보니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나이 덕에 앞뒤 분간 안 되는 회장은 이제 나나 내 멍청한 형들보다 김석진을 신뢰했다. 이제는 김석진을 놓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까딱하면 민윤기가 빈손으로 이 집에서 내쫓기게 생겼으니 주종이 반전되기 직전이었다.













윤기가 느리게 눈을 떴다. 아주 오랫동안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접시의 고기에서 여전히 따끈한 육즙이 줄줄 흘렀다. 표면의 기름기가 역겨워 토기가 일었다. 백열등 불안한 소릴 내며 깜박인다.



"형"


윤기의 부름에 식사를 마친 석진이 냅킨으로 입을 닦다 고개를 들었다.


"끝까지 한 번 해봐요. 빈손으로 쫓겨나는 게 나는 아닐 테니까."


톡톡 작은 불꽃이 일더니 필라멘트가 끊길 듯 전구가 깜박인다. 명도 질기지, 기어코 필라멘트는 붙어서 제 할 일을 한다. 몇 번이고 불꽃이 일어도 안 터지는 민윤기 이 질긴 사랑마냥.



"아, 아하하하, 윤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석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대단한 농담을 들은 양 눈가를 훔치기까지 한다. 별 좆같은 포인트에서 쇼맨십이 좋았다.


"윤기야, 우리 사랑하는 윤기. 너랑 나 둘 중 누구도 이 집에서 나가는 일은 없을 거야."

한 명이 빈털터리가 되는 일은 있어도 말이지.



그제야 민윤기 뻑뻑한 눈깔에서 눈물이 고인다. 지금 드는 감정은 안심. 그래서 민윤기는 다시 서랍장의 총을 생각한다. 꺼내와서 저 깔짝거리는 전구를 쏘고 김석진을 쏘고 그다음엔 내 대가리를 쏘자. 민윤기는 그렇게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총으로 전구를 쏘는 상상을 한다. 상상에서마저 총알은 전구를 빗겨간다. 필라멘트는 다시 꾸역꾸역 제 할 일을 한다. 백열등이 작열한다.

 

 

 

 

 

 

 

 


복주님과 백열등, 서랍장을 키워드로 1시간 전력(인데 훨씬 오래 씀...) 했던거 백업해요. 시간을 정해두고 쓴거라 길이도 짧고 엉성하지만 재밌었어요! 

 

*트위터 계정에 심플노트로 올린 글과 동일한 글 입니다.

 


비공개 처리 해두었던 다른 글도 다 공개로 돌렸어요. 글 봐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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