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8. 19:42
박지민 넓고 얕은 인간관계 좁고 깊게 좆창난거 정확히 어느 기점이냐고 묻는다면 박지민은 망설임 없이 김태형 민윤기를 만난 시점을 꼽을 것이다. 그 두 놈 새끼 땜에 인간불신에 찌들어 성악설 따위를 맹신하게 됐다. 인간은 악하다 아주. 지 감정밖에 모르고 지 김정이 세상에서 젤 중요해서 상대는 어떤지 돌아볼 생각을 안한다. 특히 궁지에 몰린 인간일수록. 그리고 지금 박지민은 김태형 민윤기 두 놈 때문에 막 궁지에 몰린 참이었다. 아무도 지민의 감정을 존중해주지도 지켜주지도 않았으며 지민이 존중하고 지켜준 제 짝사랑 상대는 그딴 걸 알지도 못하고 저만 원망했다. 그러니 박지민 미쳐돌아 불면증에 밤낮없이 이 좆같이 꼬여버린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야, 물론 어떡해야 엿 안먹고 맥일 수 있는지에 대한
그리하여 청둥번개치고 비가 죽죽 내리는 이 밤 지민은 정말이지 이 눈알 뽑히게 사랑스러운 두 사람 덕에 오늘도 수면제를 으적으적 씹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약에 의존한 수면이 숙면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말이다.
꼬리잡기
VxSUGA/JIMINxSUGA/VxIMINxV
w.heute
야 박지민 이 개새끼야 너는 진짜 개새끼야 니눈엔내가뭘로보여니눈깔에내가뵈긴하디니가양심이란게있긴해너를친구라고생각하는나한테니가어떻게이러나정말할수만있다면너면상후려갈기고여기서콱뒤지고싶어그니까당장나와나니집앞에서변사체로발견되는꼴보기싫으면
누구나 새벽 3시에 이런 전화를 받으면 당황하며 당장에 밖으로 뛰쳐나갔을 테지만 박지민은 달랐다. 박지민은 저딴걸로 쫄 만큼 민윤기를 얕게 알지 않았다. 말은 저딴 식으로 내일 없는 똘추새끼처럼 주절거려봤자 저 개 같은 새끼는 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세상에서 제일 안쓰러워서 절대 지 자신에게 나쁜 짓 할 위인은 못됐다. 못됐으니 대신 저에게 나쁜 짓 하려고 이 새벽에 전화를 열통 넘게 해대고 시위 중인 거다. 그래서 지민은 덜 깬 잠을 마저 깨기 위해 찬물로 세수도 하고 옷도 두껍게 껴입고 장우산 두 개도 야무지게 챙기고 김태형에게 문자도 넣어 놓고 밖으로 나섰다. 비가 많이왔다. 뜬금없는 가을장마에 밖은 추적추적 빗소리와 여기저기 부비트랩마냥 설치된 물웅덩이로 가득했다. 희미한 가로등 빛이 비추는 곳에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보여 지민은 한 번 부르르 떨고 우산을 펼쳤다. 지민은 이런 장마와 같은 것들이 싫었다. 두서없이 마구 쏟아지는 것 영영 안 끝날 것처럼 마구 쏟아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출 그런 것들 말이다. 그것들은 꼭 김태형 같았다. 강렬하고 허무한 성질을 띠고 있으며 보는 이까지 휩쓰는 힘을 가진 것들.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지 윤기는 알까. 지민은 어두워 보이지 않는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선물 받고 지나치게 귀여운 디자인 덕에 한 번도 안 신은 장화였다. 하지만 이런 날엔 유용한 법이었다.
일어나요.
비를 죄다 맞고 쭈그려 앉아있는 민윤기에게 박지민이 우산을 건넸다. 민윤기는 받지 않고 박지민을 노려봤다.
니가지금나한테할말이있지않냐
아까부터 다다 쏟아 뱉는 말들이 공격적이다. 지민 인상을 쓰고 다시 한번 건넸다.
받아요 제발.
할말없냐고이개새끼야
지민은 한숨을 쉬었고 윤기에게 경고했다.
3번은 없는 거 알지 그냥 줄 때 좋게 받고 들어가요
윤기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얄쌍한 지민의 두 눈엔 노란 가로등이 비췄다. 빗물이 윤기의 뺨을 타고 줄줄 흘렀다.
박지민 니가 이럴 때마다 나는 니가 너무 싫어.
지민은 이제 지금 제 앞에 억울한 듯 눈물을 짜고 있는 민윤기 면상을 치울 수만 있다면 사탄한테 제 영혼이라고 팔고 싶었다.
내가 뭐 어쨌다고요
지민이 못 참겠다는 듯 한자한자 힘을 줘 말했다. 윤기가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거기 얼굴을 묻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지민은 슬슬 걱정이 됐다.
너 김태형 안좋아한다매 너 김태형한테 아무 감정 없다매 그냥 친구고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라며 왜 걔한테 희망 고문해 왜 걔랑 자꾸 만나 내가말했잖아개새끼야난김태형이좋어죽겠다고나한번만살려달라고
지민이 머리를 짚으며 쓰고 있던 우산을 윤기 쪽으로 기울였다. 덕분에 지민의 등이 온통 축축하게 졌어 들어갔다.
형 그거 알어? 이 장화 귀엽지. 분홍색 나는 죽었다 깨나도 안 살 거 같은 장화.
윤기의 시선이 그제야 깜박이다가 지민의 발치로 향했다. 윤기이 벌떡 일어나 욕지거리를 뱉으며 지민 가까이 성큼 다가왔다.
이걸니가왜신고있어.
왜긴 왜야 김태형이 초여름에 선물해줬는데요 장마철에 신으라고 형도 알잖아 몇달동안 김태형이 실실 거리면서 선물 고른 거
윤기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주 가슴이 미어지고 비극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가막힌 얼굴이었다. 그래서 지민은 가슴이 아팠다. 그게 그렇게 가슴 아플 일이냐고 그딴 게 형한테 그렇게 죽을 일이냐고 지민은 멱살이라도 잡고 욕지거리라도 갈기는 대신 미련하게 윤기의 코앞까지 다가와 말을 이었다. 고만고만한 키에 둘은 키스라도 할 것처럼 코끝이 맞닿았다. 지민이 윤기를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고 윤기가 지민을 밀쳤다. 그거 알아요? 형 나한테 이 장화가 두 개 있어. 궁금하죠 왜 그런지 아니 아마 형도 이미 알죠? 윤기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지민은 기분이 안 좋았다. 아니 안좋은 정도 일리가 그냥 돌연사하고 싶었다. 민윤기에 의한 스트레스로 돌연사. 웃긴게 화가 났는데 그 화의 방향은 민윤기가 아닌 김태형이었다. 왜 너는 형을 이렇게 힘들게 할까. 지민이 아까 윤기가 일어나며 바닥에 내동댕이 친 우산을 다시 주워들어 윤기 손에 들려줬다. 들어봐요 형 형 입장에서 나 죽겠다고 찡찡거리지 말고 내 입장도 들어보라고. 형이 김태형 좋아 죽고 김태형이 나 좋아죽는 니들 끔찍한 짝사랑 사연 말고 내 입장 들으라고. 내 입장은 한 번도 안들어 줬잖아.
3달 전에 형한테 문자가 왔어요 검은색 장화가 귀여운지 분홍색 장화가 귀여운지. 내가 분홍색이라고 했잖아요. 기억하지 나는 형꺼 고르는 줄 알았지 당연히 형 니가 병신 똘추새끼처럼 김태형이 선물 고르는데 그게 니꺼라고 착각해서 설레발치고 앉아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시발 민윤기 핑크색 장화 신고 다니면 귀엽겠다 혼자 실실 쪼갰어요 알어? 그러고 나서 형 한동안 아주 우울모드였잖아 김태형이 누구 선물 고르길래 같이 골라줬더니 다른 사람꺼였었다고 그래서 내가 샀어요 그 분홍색 장화 형 줄려구 그래서 줬잖아 받긴받드라 근데 시발 다음날에 김태형이 지가 산 걸 나 줄지 어떻게 알았겠냐고 형 그거 알구 내가 준 거 동방 쓰레기 통에 처박아 놨드라구요 이 시발새끼야 나 진짜 요즘 형이랑 김태형새끼 땜에 갔다 온 군대를 또 가고 싶어 오바떠는 거 아니고 시발 니네가 군대보다 더 빡쎄.
지민의 말이 끝났을 때 윤기는 딴 델 보고 있었다. 매번 이러지 이 개새끼는 지 불리한 건 모르는 척. 못 본 척 못 들은 척. 지민이 윤기의 뺨을 돌려 잡았다. 민윤기 개새끼야 내가 지금까지 한 말 알아들었냐구요.
윤기가 침묵했다. 윤기의 시선이 지민을 빗겨 그 뒤를 향하고 있었다. 지민은 그걸 눈치채곤 발꿈치를 들며 윤기의 얼굴을 잡아 내렸다. 일종의 복수였다. 지민의 입술이 윤기의 턱 어디쯤에 닿기 직전 누군가 강한 힘으로 지민을 돌려세웠다. 윤기는 신경 쓰지 않았고 지민은 뽀뽀마저도 빗나가는 제 가련한 짝사랑에 좆같은 기분은 맛봤다. 검은 실루엣은 역광이어서 안보였지만 안 봐도 김태형이였다.
야 김태형 나 니가 선물해준 장화 신었어 사실 내가 산 건지 니가 선물하진 건지 몰겟는데 여튼. 지민이 최대한 크고 또박또박한 소리로 말하곤 다시 뒤를 돌아 윤기를 보았다. 지민의 팔을 움켜진 태형의 손에 힘이 들어가서 지민도 그만큼 세게 윤기의 어깨를 잡았다. 지민은 지금까지 나름 성심성의 것 굴었다. 누구도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고 제 마음이 이뤄지길 바래본적도 없었고 그래서 둘 사이에서 노력했다. 근데 결과가 이건거지.
아 내가 말했나 형 나 형이 동방 쓰레기통에다 버린 내 선물 다시 주워왔거든요.
지민은 이걸 울며 말해야되나 웃으며 말해야되나 고민하다 선언하 듯 내뱉었다.
어떡하냐 형 니가 필요없다고 자꾸 버려도 난 형이 너무 좋아 미처돌아버리겠는데 그래서 앞으로도 나도 니들처럼 그냥 내 감정에 충실할라고요.
민윤기와 김태형 얼굴이 동시에 창백하게 굳었다. 지민은 지금 제 뱉은 제 말에 그 둘에게 엿을 먹인건지 제가 먹은 건지 고민하며 우산을 집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 뜨거운 물에 씻고 누울 거다. 그래. 그리고 푹 자는 거다. 이 똘추짓의 다음은 내일 생각하는 걸로 해야겠다.
*리네이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