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깔찬양사

2020. 1. 28. 19:04

w,heute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눈깔이었다. 고 눈깔. 양옆이 바싹 좁고 아래가 미묘하게 떠 있는, 눈도 작아서는 그 눈깔을 똑바로 떠도 반토막난 검은자. 얼굴도 코도 둥글고 밍숭한데 앞 머리가 날이 바짝 선 게 혼자 모난 눈깔로 자연히 신경이 쏠려 순한 인상은 못됐다.

민윤기 박복함에 탓하자면 죄다가 고 밑으로 흐르듯 빼죽 튀어나온 눈 앞머리에서 흘러나왔음이 자명하다.

민윤기 불행에 기반암까진 못되더라도 심토 정도는 얹은 김석진이 고 흐르는 눈깔 앞머리에 갇혀 곧 죽자고 민윤기 멘탈을 깨부수는 실정이라 일단 김석진은 그렇게 지껄이곤 했다. 김석진은 정말이지 민윤기 그 눈깔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얼마나 사랑해 마지않냐면 민윤기보다 민윤기 눈깔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게 이 씨발스런 민윤기 짝사랑사 전부다.

 

 

 

눈깔 찬양사

김석진 민윤기

 

 

 

 

 

 

김석진은 재능적 측면으로 따지고 보자면 꽤 불쌍하고 불운한 경우다. 그니까 눈은 드럽게 높은데 재능은 좆도 없는 케이스. 눈이라도 좀 낮았으면 자아도취해서 살아도 나쁘지 않았을 정도의 제정 상태의 집안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렇게는 살 수가 없었다. 없었을 뿐 아니라 종종 눈 앞에 울뚱불뚱하고 뻣뻣한 캔버스 천 꼬아 이젤에 목을 매는 상상을 하곤 했다. 민윤기는 그게 김석진 대가리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예술적인 사고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좆나게 구리다고 생각했다. 그니깐 다시 말하는 건데 정말 드럽게 재능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석진이 매사에 이젤에 목메 뒤지는 상상이나 하면 재능 없음을 우울해하며 살았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미술적 재능 빼곤 거의 모든 걸 갖은 인간이었으므로 굳이 그렇게 살 필요도 또 사실 그걸 두고두고 우울해할 정도로 감상적인 인간도 아니었으므로 그를 일컬어 불행이나 불운을 논하는 것은 병신 같은 짓이었다. 그런 단어, 불행 불운 박복 등을 논하자면 애비 손에 덜렁 보육원에 버려진 여덟 민윤기에서 시작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관심 있는 부분은 기반암이니 모질물이니 하는 것들이 아닌 심토이니 시간은 그로부터 15년 뒤로 넘어간다. 스물셋 편돌이 민윤기를 스물넷 서양화과 김석진이 본 그때로. 김석진은 10개입 Feel Ultra Thin -당신이 원하는 성감을 위한- 초박형 콘돔 박스를 내밀었고 3일 동안 정확히 3시간 잔 민윤기는 콘돔 박스만큼이나 새콤하게 빨간 흰자위를 하고 눈깔을 치켜떴다. 그리고 김석진은 그 눈깔이 눈꺼풀에 덮히고 바코드에 빨간 불빛이 들어오는 사이에 사랑에 빠졌다. 민윤기 말고 민윤기 그 처량 맞다 못해 박복한 눈깔과.

그 길로 김석진은 콘돔 박스를 후드 주머니에 구겨 넣고 저를 기다리는 여친 집을 지나 실기실로 직행한다. 맹세코 입시 이후에 단 한 번도 그렇게 오랜 시간 이젤 앞에 앉아있기는 처음이었다. 앉아있다 엉덩이가 배겨 이젤을 높이 서서 그렸고 다시 앉기를 반복한다. 종이 팔레트가 끝을 보이고 물통에 아크릴이 덕지덕지 굳는다. 그날 김석진은 처음 제 눈에 차는 것을 그려낸다.

 

 

한 한 달. 김석진은 제 잠자던 재능이 깨어난 줄 알았다. 당연히 물론 그럴리가 없었다. 캔버스에 담기는 것들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그러므로 김석진이 민윤기 찾아 헤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민윤기가 처음 김석진 손에 이끌려 작업실 문을 열자마자 본 게 아니, 민윤기 눈깔로 쑤셔 들어온 게 제 눈깔이었다. 이젤에 버겁게 세워진 아주 커다란 캔버스에 아크릴로 거칠게 찍어진 커다란 눈깔. 그냥 까맣고 하얀 줄 알었던 눈깔 속 소름 끼치도록 넘처나는 색감들 여린 점막과 실핏줄 홍채와 동공 그 위를 덮은 미끌한 각막. 옆에서 김석진이 100호 어쩌고 짜리 캔버스에 아크릴이니 어쩌니 친절히 말해줬지만 그딴 거 들릴 리 없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 새끼 미친놈 아냐? 아마 김석진 상판대기가 좀만 덜 매끈했더라고 민윤기는 당장 그 자리에서 내뺐을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야 말로 그려 넣은 듯 완벽한 곡선을 한 눈매를 갖은 주제에 예쁘지도 않은 제 눈에 집착하는 꼴이 더 괴상하긴 했으나 겉껍데기에 약한 민윤기 눈엔 저런 얼굴로 나쁜 짓 할 거 같진 않았다. 박복한 민윤기, 그 새끼가 진짜 미친놈인 줄도 모르고

 

시급 5만 원 단, 부를 때마다 재깍 튀어 올 것, 알바시간은 피해 주겠음.

 

숫자 5에 민윤기가 흔쾌히 동의했고 그날부로 김석진 작업실에 불려 다니기 시작한다. 거기서 끝냈어야 되는데 말이지.

 

 

"윤기야 너 너 눈이 어떤 줄 아니? 희한하게 오른쪽 검은자가 쫌 더 밑에 있다"

김석진이 민윤기 왼쪽 눈가를 누르며 말했다. 여튼 그때도 지 입장에서 밖에 대가리가 안 굴러가는 놈이었다.

 

그래서 오른쪽 검은자가 더 많이 보이거든 글고 이쪽이 더 아래로 처져서 더 순해 보인다 눈 밑에 너는 이렇게 퍼렇게 착색된 건 아니? 첨엔 그림잔가 했는데 아니더라 점막은 벌건게 눈 밑은 시퍼러니 색이 묘해 눈 앞머리도 말이야 왼쪽보다 덜 뾰족해 니 왼쪽 눈이 딱 오른쪽 눈만큼만 됐어도 더 밋밋하고 순해 보였을 거다 근데 난 니 왼쪽 눈이 더 좋다 이쪽은 진짜 삼백안이야 눈도 작은 게 검은 자가 아주 훌쩍 올라가서 이래 이 눈으로 앞이 잘 뵈기는 하냐 가끔 너 눈꺼풀 안에 눈동자 반토막은 딴 세상 보고 있는 거 같아 쫌 오싹하다 글케 무감한 눈 하면서 니 감정은 죄 글루 보내는 걸까 싶어 너가 나 올려다보면 그래 지금마냥 이쪽 눈 밑이 훌쩍 떠가지고 흰자에 핏줄이 검은자에서부터 솟아난 마냥 검은자 주위로 뻗어있거든 그거 치켜뜬 눈 아래로 보이면 나 슬 거 같아 뭐가? 뭐긴 뭐야 또 눈앞머리 니 그 몽고주름 땜에 아래로 흐르는 거기 여기가 날 섰어 그래서 눈 두 짝 아랫 라인이 전혀 딴 판이야 나는 그거 볼 때마다 붓을 안 잡을 수가 없는 거지. 사랑 안 빠질 수가 없는 거지.

 

 

이 소름 끼치고 구구절절한 묘사들이 민윤기 귓구멍엔 꽤나 로맨틱하게 들렸다는 거였고 다시 말하지만 겉껍데기에 약한 민윤기는 저것들이 무슨 고백 인양 삼일 밤낮을 속에 안고 앓는다. 사랑에 안 빠질 수 가없는 거지. 그니까 그런 목소리로 그런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 민윤기는 사랑 안 빠질 수가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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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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