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우 권순영

이지훈 권순영

전원우 이지훈

 

 

 

 


   이새개새1

    w.허이테

 

 

 

 

 

 

 

걔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끔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키 훤칠한 게 뻐썩 말라가지고 뼈대는 넓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굴도 완벽히 식이었고 내 손가락 한마디는 족히 될 거 같은 콧대에 얇은 은색 테가 있어도, 없어도 잘난 얼굴이었다. 화려하게 막 잘난 건 아닌데 반드시 뒤돌아보게 하는 얼굴. 딱 보자마자 얼굴값 하게 생겼다고 또 가는 데마다 죄 사람 들끓는데도 종국엔 꿋꿋이 혼자 있는 꼴이 나랑은 좆나 인연 없을 인간군상이었다.

 

어쩌다 말 섞은 건, 진짜 별건 아니었고 화장실에 흘리고 간 폰 주워주드라. 심지어 걔가 주은 것도 아니었고 걔 친구 놈이 주운 폰 보더니 뺐어와선 나한테 이거 니꺼 아니냐고 묻는데 목소리도 좋아서 괜히 열뻣었다. 그리고 그담엔 열 올랐다. 내 폰인 거 어떻게 알았지. 

 

그러고 나선 걔랑 못 친해져 안달 난 이지훈이 있었고 난 걔랑 못 친해져 안달 난 그 이지훈이랑 쫌이라도 못 붙어있어 안달이었다. 주절주절 걔 소문을 뱉는 입술만 멍하게 보는데 이지훈이 그랬다. 전원우 걔는 냄새도 좋더라. 담배도 안 피나봐 걔 친구들은 죄다 꼴초던데 걔는 담배 싫다 그러더라. 걔 은근 생각 있는 거 같아. 뭐야 나 걔 편의점 뒷 공원에서 당당히 교복입구 담배 빠는 거 봤는데. 하는 말을 삼켰다. 이 놈이랑 걔, 그러니까 전원우 어떻게든 말 섞는게 꼴보기 싫어 그랬다. 

 

 그날 야자 끝나고 집 가는 길에도 전원우 교복 입고 담배 빨길래 비스듬히 걔가 나 안보일 각도에서 손톱만 물어뜯다가 불쑥 앞에 서 물었다. 

 

"너 왜 이지훈한텐 담배 안 피우는 척했냐." 

 

마른 손가락에 뻘건 담뱃불이랑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개 올리고 얼굴을 볼래도 가로등 역광에 그 얼굴이 통 봬지가 않았다. 그래서 걔 빨아들일 때마다 좀먹듯 타오르는 흰 막대 끄트머리만 보는데 전원우는 갑자기 지 물고 있던 담배를 내 입에 물렸다. 이 새낀 아가리에 침도 없는지 필터가 건조했다. 여전히 얼굴은 통 안 뵈고 담배연기는 피어오르고 당황해 물고만 있다 뻑 한번 빠니 걔 입에서 그랬던 것처럼 뻘건 불이 좀먹어 흰 종이를 껌게 태웠다. 그러더니 걔, 너도 피네 담배. 라며 대뜸 나를 공범으로 만드는 거라 나는 그날부로 공범이 돼버렸다. 나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이지훈이랑 백날천날 붙어 다니면서 비밀 하나 없던 크라스탈 클리어한 우정에 빽빽 담배연기 하나 비밀이 생겨버렸다. 

 

 

 

전원우 요 여우 같은 새끼는 학교에선 그렇게 모범의 끝일 수가 없는 게 손가락에 종이 막대 하나 끼운다고 또 그거 나뿐이 모른다고 하는 게 자꾸만 펄펄 끓었다. 하루는 또 공원에 숨어 뻑뻑 뻐끔뻐끔하는데 걔가 가방에서 흰 막대 마냥 흰 약통과 물을 꺼내 미간을 구기고 삼켰다. 이걸 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필터 짓니기는데 걔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거다. 수면제. 나 불면증 있어서. 뻐금 벌어지는 입을 애써 필터로 합 모으며 시선을 어디 둘지 모르는데 아무렇지 않게 지 얘길 지껄였다. 정신과 다니고 또 불면증에 많이 예민해 주변에 사람 끓는 거 딱 질색이고 또 그런 이야기들.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르게 집 근처로 와 담배 냄새 빠지라고 습관적으로 동을 뺑뺑 도는데 어 이런 얘기는 나 너무 급작스럽구 또 원래 이런 건 많이 친한 사람한테나 하는 거 아닌가 우리 그렇게 친했나 이유 없이 헐떡이며 더 더 빨리 돌다 내 대가리도 돌아 버릴까 딱 멈춰 생각을 좆빠지게 해봐도 자꾸만 귀 벌게지는 요상한 결론으로 귀결되는 거라 한참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이지훈 윤리 시간에 대가리 처박고 잘 때 쌔벼온 번호로 문자를 꾹꾹 남겼다. 

 

야 있지 아까는 너가 너무 갑작스럽게 말한 거 같아. 너도 당황했을 거 같은데 어 암튼 누구한테 막 말하고 그러지 않을 테니깐 그런 걱정은 말고 또 너야 뭐 주변에 친구도 많고 이런 얘기할 사람두 많겠지만 혹시나 얘기할 사람 필요하면 연락해라 아님 말고. 

 

고치고 고치다 쓰고 지우다 간결하게 썼는데 쓰고 보니 폰 화면에 그득 차는 게 너무 길게 썼나 한참 망설이다 전송하고 나는 기분이 왜 간질간질 한 지 마구 넥타이 위를 긁었다. 집 가서 씻고 누웠는데도 한참을 답이 없길래 초초하게 손톱 뜯다 폰 쥐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내 긴 문자 무색하게 어 고마워 딱 네 글자에 베개에 머리 박고 아 씨발 보내지 말걸.

 

 

 

 

 이지훈 전원우한테 좀 스스럼없는 다가갔고 전원우도 지같이 존나게 큰 지 친구들 아니면 벽쳐대던 게 이지훈은 왜인지 또 받아줘서 둘이 퍽 친해져 있었다. 전원우 우리 반에 친한 거 이지훈 밖에 없잖아 하는 그런 사이. 이지훈은 또 권순영이랑 제일 친하고 근데 야자 끝나면 이지훈 모르게 권순영이랑 맞담 뻑뻑 피는 전원우. 하는 요상한 관계가 한 두어 달 계속됐고 가끔 이지훈 쫑알거리는 병아리 새끼 같은 입술에 또 넋을 놓다 그 입술이 전원우를 발음하면 침을 삼다가도 켁켁되었고 또 이지훈이 말하는 전원우 이야기란 게 다 내가 아는 얘기라 묘한 쾌감을 느꼈는데 이 설명할 길 없는 감정에 방관만이 답인 거라 존나 이상하지 나랑 이지훈 친하고 전원우 이지훈 친하고 나 전원우 친한데 전원우 이지훈 권순영은 안 친해. 이게 뭔 개 같은 관계야 하다가도 이지훈 자꾸만 전원우랑 둘이 있으려 하는 게 괘씸해서 닥치고 있었다. 그렇게 흘러가던 관계가 획 바뀐 건 아주 아주 사소한 말실수인지 의도인 어쨌든 그 덕이었는데 그날은 전원우가 야자 시작 전에 대뜸 지 담배랑 라이터를 쥐어주더니 오늘은 혼자가 피라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고 말해주지도 않아서 이지훈이랑 톡 하면서 혼자 매번 피던 그 나무 아래서 뻑뻑거리는데 이지훈한테 대뜸 지금 오겠냐고 톡이 왔다. 

 

우리 엽떡 먹는데 좆나 매워서 반도 못 먹음 올래? 

 

우리. 우리. 우리. 우리. 우리. 이지훈 카톡 프사가 어느새 엽떡과 브이하고 있는 길쭉한 손가락. 배신감에 열이 올랐다. 누구를 향한 건지도 모르겠고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너무 좆같아서 입에 문 담배 끄지도 않고 사거리로 나갔다. 신호등에서 사람들이 힐끗대는 걸 보고 서야 끄고 떡볶이집 앞까지 왔는데 당연 냄새야 안 빠졌고. 아 씨발 몰라하고 들어갔다. 그래. 우리. 이지훈이랑 전원우. 

 

나는 맨날 시커먼 담뱃불 앞에서 보던 얼굴을 시퍼런 가게 형광등 아래서 보는 이지훈. 나는 맨날 쳐다만 보는 뾰족한 입술을 나랑 맞담배 피우던 손가락으로 쓱 쓰는 전원우. 아 그래 너희. 

 

테이블도 좆만 한 이인 테이블에 의자도 딱 두 개뿐인데 나를 왜 불렀어 이 씹새끼들아. 욕을 삼키고 뻔뻔하게 의자 끌고 앉아 이지훈 손에 들린 포크에 떡볶이에다 입부터 갔다 대었다. 담배냄새가 캡사이신에 묻혀 이지훈 코엔 가지도 못했다. 

 

근데 권순영도 매운 거 못먹잖아. 라고 얇은 입술이 지껄였다. 뾰족한 이지훈 얇은 입술 말고 아래가 더 도톰한 전원우 얇은 입술이. 쿨피스 따던 이지훈이 오른손을 멈추고 이지훈 왼손 조몰락거리던 내 손도 멈췄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는데 내가 물었고 전원우가 이지훈 손 조물락 거리는 내 손 위에 묻은 떡볶이 소스를 닦아주며 말했다. 너 불닭도 못 먹는다고 어제 말했잖아 똘추야. 아니 똘추는 너다 이 씨발롬아 아닌가 씨발 내가 똘추지 뭐야 이 좆같은 상황은 씨발 무슨 나랑 전원우가 불륜을 걸린 것도 아니고 왜 내가 기분이 왜 이래. 

 

"나는 둘이 말하는 거 한번도 못 봤는데 언제 친해졌어?"

 

몇 초 안 되는 시간에 혼자 뺑 돌던 뇌는 이지훈이 아무렇지 않게 묻는 순간 내 머리를 탈출하고 가게를 탈출하고 지구를 탈출해서 대기권을 나가다 이내 불타버렸다. 말간 얼굴엔 의문 왜엔 딱히 별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지훈은 지 감정 숨기는 거 좆도 못하고 그러니까 진짜로 저 조그만 대가리엔 의문 외의 부산물들이 없다는 얘기다. 진짜. 순식간에 허탈함과 그보다 더 큰 뭔가가 밀려왔다. 얜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이 뼈까지 헤테로 새끼 이 씨발. 이년 넘게 내리 이 새끼한테서 유사연애를 처먹어도 암 껏도 모르는 똥강아지 새끼. 내가 너를 갖고 유사불륜을 처먹어도 모르는구나. 전원우는 접시에 코를 박고 커다란 어묵을 처먹고 있었으므로 또 그 얼굴을 보지 못했고 사실 느껴도 느껴도 허해지는 이 허탈감에 남 얼굴까지 살필 여력도 없었으므로 나도 잠자코 떡볶이나 처먹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랑 전원우는 같은 방향이었고 이지훈은 반대 방향이었는데 이지훈 혼자 집 가기 싫다고 엉엉되는 걸 결국 나는 집 앞까지 대려다 주었고 전원우는 내일 아침부터 학원이라며 횡가버렸다. 그날 날밤 깐게 분명 나뿐 일 거라 습기 차는 눈 배게에 문 델 수 밖에야.

 

 

 

 

 

 

 

 

 

 

 

 


 

심장이 

딱딱딱

 

 



  이새개새2

   w.허이테

 

 

 

 

 

 

걔네, 그니까 전원우 이지훈의 공통점이라 하면 시간개념이 흐릿하다 못해 민폐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쪽이며 내 경우는 시간 약속을 지키는데 거의 강박이 있는 부류였다. 당연히 학교를 통으로 째는 경우는 있어도 지각하는 일은 없었고 전원우의 경우는 무단지각만 아슬하게 면하는 수준이었으며 이지훈은 생기부로는 대학 가는 꿈도 안 꾸는 편이 나은, 그니까 시간 개념이 부족한 정도를 넘어 아얘 태어나서 그딴 건 가져본 적도 없는 정말 깨끗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요지는 이지훈이 1교시가 10분 남은 시간에 슬며시 환기한다고 열어둔 뒷문으로 좆만한 키 더 구부려 기다시피 2 분단 맨뒤 내 옆자리에 가방부터 거는 일은 놀랄 일도 아니고 내가 짧은 손톱으로 열나게 아랫입술을 좆창 낼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거다. 

 

쥐새끼마냥 소리도 없이 책상에 대가리부터 박곤 이지훈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키득거렸다. 팔로 마이를 부둥켜안고 색색 숨 쉬는 폼이 이지훈 의도와 상관없이 마이 냄새를 샅샅이 흡입하는 꼴로 보였고 이지훈이 제 마이를 입고 있었으니 필시 팔로 부둥켜안은 건 이지훈 껀 아니었다. 입술 각질을 매만졌다. 이거 뜯으면 입술이 터져 피가 맺히다 못해 뚝 흐르겠는데. 뜯을 곳을 찾아 천천히 뜯을 자리를 가늠했다. 전원우 마이 안 입고 와서 선도 걸렸는데. 뚝. 하얀고 검은 노트 위에 피가 떨어졌다.

 

10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이지훈만 멍하게 쳐다봤다. 간간이 피 흐르는 입술 휴지로 뭉게는 것도 잊지않았다. 이제 분명 전원우 후드 안에 마이까지 껴입고 춥다며 집에 가는 꼴을 내가 봤으니 기분이 묘하다 못해 개좆같아 지는 수순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젯밤 이지훈 징징대는 거 가방까지 앞뒤로 둘러 매고 집으로 보냈다. 그때가 11시였다. 집 가는 내내 시답지 않은 소리나 핑퐁하며 갔고 이지훈 딱히 나한테 뭘 묻지도 않았고 궁금해 보이지도 않아서 나도 별말 없었고. 마이가 왜 이지훈 한테서 나와? 그걸 니가 왜 갖고 있어? 물음이 산발적으로 떠올라 그거 잡아 수장시키려 또 입술을 뜯었다. 쉬는 시간 끝나자마자 전원우가 이지훈한테서 마이를 가져갔다. 그 꼴 멍하게 보는데 둘 다 딱히 설명이 없다. 대신 전원우 멍한 내 눈앞에 손을 이리저리 흔들고 지나갔다. 학교에서 아는 척하는 거 처음인데 그딴 거에 의미둘세 없이 골이 울렸다.

 

 

졸지에 이지훈 권순영 전원우가 ‘우리’가 된 것에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나뿐이었다. 전원우 그날부로 자연스럽게 나와 이지훈 사이에 녹아들었고 이지훈이 굳이 교탁 앞 전원우 자리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쉬는 시간에 수학 문제집 덜렁 끼고 샤프 한 자루 쥐고선 이지훈을 옆으로 몰아가며 가뜩이나 비좁은 의자에 제 엉덩이를 들이밀거나 내 책상 위에 걸터앉아 낄낄거리며 샤프를 놀렸다. 야 풀지도 않을 거 왜 매번 들고 오고 지랄이야. 짜증 내면 대체 어느새 푼 건지 모를 문제들을 보여 주며 어깨를 으쓱했다. 순영아 대학 가야지. 말이나 못 하면 저 개새가. 그 말에 짜증 내는 건 이지훈 몫이었다. 점심시간에 나와 이지훈 앞에 식판을 드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동안 꼬박꼬박 딴 반 애들이랑 먹더니 저 새끼는 지 친구랑 먹지 왜 껴. 불안했다. 불안한데 불안의 방향을 알 수가 없어 불안이 녹조마냥 더럽게 떠다녔다. 1년, 이지훈을 짝사랑했다. 그다음 1년 커뮤니티에서 만난 동갑에 어떤 놈과 찐하게 몸 부대끼느라 짝사랑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 이제 고삼이야. 배게에 엎어져 있는데 걔가 그래서 그날부로 쫑났다. 그리고 걔 말대로 고삼이 됐다. 십구 보다 고삼. 대학은 가능하난 잘 가야지. 3년째 이지훈이랑 같은 반이 되고도 떠오르는 감상이 그것뿐이라 아마 짝사랑 소리 소문 없이 끝난 줄 알았지. 전원우가 끼어들기 전까지. 그래서 내 좆같은 짝사랑 안 끝났나 했다 또 그것도 전원우랑 맞담배 빨기 전까지. 감정은 동시다발적이고 두서가 없었다. 확실한 건 내가 두 명에게 동시에 소유욕을 느낀다는 점과 이지훈은 그래 봐야 뼈까지 헤테로라는 점이거라. 그럼, 전원우는? 권순영 온 힘을 다해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이게 다 뭔 소용이야 그래 봐야 전원우도 헤테로겠지 뭐 씨발. 이 다른 의미로 씨발이 되는 건 그날, 그러니까 권순영이 온 힘을 다해 책상에 머리를 박은 날 저녁으로 돌아가자. 

 

이지훈 수업시간 내내 기하와 벡터 사이에 끼어 기하 개새끼 벡터 씨발새끼를 외다 수학학원으로 죽상이 되어 떠났고 그날따라 텅텅 빈 교실엔 열명 남짓한 애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나마도 대여섯 명은 대가리 박고 꿈나라로 떠난 지 오래였고 이지훈 빈자리이자 권순영 옆자리엔 전원우가 앉아 깡마른 몸을 희한하게 구기고 공부 중이었다. 가끔 문제집 넘기는 소리와 색색 되는 소리 속에 있는 힘껏 권순영이 대가리를 처박았고 응당 들려야 할 뼈와 나무가 만나는 소리 대신 읍. 전원우 신음 참는 소리가 들렸다. 제 이마와 책상 사이 끼어든 마른 손에 권순영 눈물이 찔끔 짤 거 같았고 전원우 실제로 눈물을 찔끔 짜며 벌게져 고통에 바들거리는 손등을 부여잡았다. 

 

야-이-미친놈아-

 

전원우가 나 하고 싶은 말을 뻐끔거렸다. 척 보기에도 너무 심하게 벌게진 손에 당황해 일단 걔 손을 붙들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헐 야 어떡해 보건실 가자. 보건실이 지금 열었겠냐? 아 그러네 어쩌지 교무실 가서 뿌리는 파스라도 가져올까? 됐어. 그니까 왜 손을 집어넣어 병신아. 니가 그렇게 돌대가린지 몰랐지. 이게-. 텅 빈 복도에서 숙덕거리다 뒷문 열고 야리는 반장놈에 전원우가 나를 계단 근처로 몰았다. 왜 그러는데. 공부가 안돼서. 너 언제는 공부가 술술 됐냐. 너 짜증나. 응 니가 더. 안경 아래 찡그린 코 잔등을 야리다 뭔 짓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전원우가 계단에 걸터앉았다. 마른 등과 좁은 허리와 너른 어깨가 잔뜩 구부정했다. 전원우는 목을 수구리고 얼떨결에 가지고 나온 샤프를 끝을 질겅거렸다가 야 앉아봐. 유달리 낮은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돌바닥으로 찬기가 스며서 쭈그려 앉았다. 말려 올라간 입꼬리며 툭 불거져 나온 턱 뼈며 하는 것들이 눈에 담겼다. 이 끝으로 샤프를 까딱거렸다.

 

"우리 야자 쨀까?"

 

샤프를 물고 푸스스 웃었다. 깜박깜박.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뜨면 전원우가 웃고 있다. 돌바닥은 차고 붕 뜬 엉덩이 깨로 한기가 올라오니 오싹한건 당연하지 근데 다른 의미로 목뒤가 오싹한거라 열린 창으로 바람이 부는데도 교실에서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볼이 뜨끈했다. 깜박. 숨 쉬듯 당연한 행위가 어색했다.

 

"미쳤냐."

"왜 공부 안된다며"

 

말려 올라감 입꼬리와 구부정한 자세로 긴 다리를 안고 앉아있는 전원우.

 

습관적으로 입술로 올라간 손이 빳빳했다. 아랫입술을 손톱으로 잡아 뜯는다.

 

"넌 맨날 입술 잡아 뜯더라"

 

손목을 잡아오는 버석한 손. 너 언제부터 이지훈도 몰랐던 내 습관을 알고 있어? 말을 꿀꺽 삼킨다.

 

복도에 듬성 듬성 빛찾아 날벌레 꼬인 형광등이 깜박였다. 형광등 아래 그제야 나는 골몰하던 감정의 방향을 문득 보았다.

 

 

 

"나갈 거지?"

 

전원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기 있어 내가 옷이랑 가방 가져올게"

 

슬리퍼 딱딱거리는 소리가 멀어지는데 속 안에서 뭐가 딱딱 거려 딱 딱 딱.

 

보는 사람도 없는데 입꼬리를 잡아 내리며 입술을 말아 안쪽으로 숨겼다. 딱 딱 딱 딱. 아 씨발 너무 좋아 어떡해.

 

 


 

 

 가을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급격하게 선선해졌다. 낮에는 조끼에 셔츠까지 벗어던지고 반팔티를 펄렁이고 땀 뻘뻘 흘리다가도 해가 지면 마이까지 죄다 껴입어도 으스스해 추위 오지게 잘 타는 전원우는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춥다며 붙어왔다. 하교 후 담배 빠는 게 아니고 이지훈이랑 셋이 세트로 있는 게 아니고 전원우랑 둘이. 기분 묘하게. 얘랑 어쩌다 이러고 있고 또 나 대체 또 뭔 감정을 키우고 있었고 또 넌 뭔 생각이고 또 우리가 아마도 친구 일 건데 또 지금 이 시간에 얘랑 왜 둘이 밖에 나와서 걷고 있지? 다시금 입술을 말아 안쪽으로 숨겼다. 춥다 엉엉 거리는 전원우 앞으로 춥지 말라고 내 가방까지 메줬다. 

 

"이건 춥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니 가방 떠넘기는 거 같은데?" 

"아니 춥지 말라고 앞 뒤로 메면 덜 춥잖아." 

"뭐야 그럼 팔은?"

 

팔은.... 이리 와. 마이를 벌려 전원우 팔을 잡아다 허리와 마이 사이로 집어는다. 걔 팔이 마이 안쪽 내 허리에 안착한다. 딱. 딱. 딱. 스타카토로 내가 끄는 슬리퍼 소리가 바짝 따라붙었다. 앞 뒤로 빵빵한 가방 메고 내 허리를 잡은 전원우 입을 벌리고 웃었다. 코 잔등이 찡긋거렸다. 슬리퍼가 딱딱거렸다.

 

점심시간 쉬는시간 애새끼들 죄 쪽문(물론 그 애새끼들 중 젤 빠른 애새끼가 권순영이고 젤 자주 넘는 애새끼가 이지훈이었다)으로 편의점가는 통에 잠겨 버린 문 바로 뒤에 동네에서 제일 큰 공원으로 이어졌고 공원을 쭉 통과하면 상가와 쇼핑센터들이 밀집한 거리가 나오고 그 건너로 나와 전원우네 집이 있는 빽빽한 아파트 단지가, 상가 거리를 따라 쭉 가면 네온싸인 빡빡 학원촌이 또 그 학원촌을 지나면 이지훈네 집이었기에 이러나저러나 우리 하교 길에는 필수인 공원이었다. 3년 내내 지겹도록 왔다갔다한 공원이었다. 해 다 내린 어두운 공원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이따금 농구공 튕기는 소리 제외하면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전원우 손부터 팔이 닿아있는 허리가 삐걱거렸다.

 

"너는 허리에 살도 없다."

 

가볍게 옆구리를 쥐어 오는 손에 허리를 내줬던 걸 후회하며 팔을 뺐다.

 

"아 하지마"

"왜"

 

손가락이 마이 안으로 쑥 들어와 옆구리를 찌르는 손에 강제적으로 웃음이 터졌나왔다.

 

"야 나 간지럼 진짜 많이 타 하지맠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일로와 봐봐"

 

손이 치워내며 몸을 빼자 앞 뒤로 맨 가방 덕에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전원우가 앞으로 기울더니 결국 무릎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방을 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제가 넘어지고도 웃기는지 전원우가 낄낄거리며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야 뭐하냐"

"몰라"

"빨리 일어나 쪽팔려"

"시바 가방 무거워서 못 일어나겠어"

"아나 내 가방 줘"

"싫어"

 

내 가방을 지 가방 마냥 소중하게 껴안았다.

 

"왜 뭐 하는 건데 진짜"

 

내 가방을 뺏어 들며 전원우 손을 붙잡아 일으켰으나 일어날 의지가 없는 몸뚱이가 힘없이 늘어졌다.

 

"빨리 일어나라고오"

 

가방을 내평겨치고 느릿하게 일어난 전원우가 옷을 털며 일어났다.

 

"아 인간적으로 가방 너무 무거워 이러니까 키가 안 큰다니까?"

"야 넌 크잖아 임마 그게 지금 내 앞에서 할 말이냐"

"너 앞에선 해도 되지 이지훈 앞에서 하면 바로 니킥"

"놉 그 새끼 성장판 닫히라고 무릎 갈겨 조심해 이지훈한테 무릎 존나 세려 맞아서 내가 지금 키가 안 큰 거라니까?"

"후 무섭네 자근 쥬니는 참지안네.....아 맞다 빨리 가야 돼 이지훈 8시 반에 끝난 다고 했어"

"어?"

"걔 수학학원 8시 반에 끝난데"

 

왜? 그게 지금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불쑥 튀어나오려는 말이 백설공주 독사과 마냥 목에 걸려 아 존나 씨발 나는 여기서 쓰러지지도 못하거든.

 

"아아 그래?"

"엉 아까 야자 하는데 지 오늘 30분 일찍 끝난 다고 야지째고 오라고 그러던데'

"아"

 

그니까 지금 우리가, 이지훈 데리러 가는 거였네? 어 존나. 삼키지도 않은 독사과 목구멍을 막아오는 거라 병신 똘추새끼야 어쩌냐 뭐 전원우랑 데이트라도 하는 기분이었냐 유사연애 작작처먹어 너 전원우한테 이지훈 부속품 그거라니까? 독사과가 목에서 말을 한다.

 

"야!!!! 왜 이렇게 안 와!!!!!!"

 

타이밍의 귀재 이지훈 사랑하는 지훈이 오늘만은 왤케 좆같지 저 새낀 시간약속 지키는 꼴을 본적이 없는데 왜 오늘따라 딱맞춰 와 난 약속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저 멀리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지훈이 슬리퍼를 끌면서 용케 뛰어 오고 있었다. 전원우 이가 보이게 웃는다. 자득 주름진 코 잔등과 올라간 광대 벌써 목구멍이 큭큭대며 웃는다. 웃는다. 이지훈 가까이 오고 걸음이 차츰 느려진다. 교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슬리퍼가 딱딱 거린다. 딱. 딱. 가로등 아래 아까부터 찬 바람맞은 전원우 뺨과 코가 붉다. 찬바람 땜에 붉은 거지. 딱 딱 딱 이지훈 슬리퍼 끄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번엔 나 말고 내 옆에서 딱 딱 딱 소리가 들린다. 딱 딱 딱 딱 아 씨발 권순영 딱해서 어떡해?

 

 

 

 

 

 

 

 

 

 

 

 


 

개새끼

의 조짐

 

 

   이새개새3

   w.허이테

 

 

 

 

전원우 심장이 딱딱 뛰어서 권순영 딱해져 버렸다. 딱한 권순영 전원우 개새끼 이지훈 나쁜 놈. 지금 당장 아무 데나 대가리 처박고 울어야 한다. 그래야 이 좆같음이 사라질 거 같다. 집에 가야 돼 아니 이 새끼들을 눈 앞에서 치워야 돼. 생각을 그렇게 하는데 발은 전원우 이지훈 뒤를 쫓고 있었다. 둘만 있게 못 둬서. 뒤죽박죽 엉킨다. 정리가 필요한데 정리고 뭐고 발긋한 전원우 면상을 냅다 갈기고 싶고 아 몰라 씨발 일단 둘이 못 둬. 

 

"피시방 고?"

"안돼 권순영 게임 안 하잖아."

"아 순영아-"

 

단호한 이지훈 말에 전원우가 짜증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돌아봤다. 왜 왜 게임 안 하는데 그 좋은 걸 왜 안 해 엉? 재미없어. 졸라 재밌어 오늘 해보자 오키? 야 그러지 마 저 새끼 못해서 재미없는 거야 걍 노래방이나 가자. 아 왜! 나 피방 안 간 지 일주일인데 권순영 땜에 피방을 못가- 장난인 거 아는데 권순영 대가리 상태가 장난이 아니라 눈가에 열이 올른다. 어깨에 팔을 걸며 피방에 가서 라면이라도 먹으라며 꼬셨다. 웃으면서 욕지거리라도 갈겨 줘야 하는 타이밍인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문다. 이지훈이 내 표정을 쓱 훑는다. 새꺄 피시방은 너 혼자 처가든가 나도 눈 아파서 피방 가기 싫어. 나랑 이지훈 3년을 허투루 보낸 게 아니라 이지훈 전원우 장난을 적당히 끊어 낸다. 이지훈은 잘못이 없다. 아는데. 이지훈 말에 피방 타령을 뚝그치는 전원우가 좆같아서 기분이 개 같아진다. 물론 전원우도 잘못은 없다. 충분히 웃어넘길 만한 상황이다.

 

발걸음을 뚝 멈췄다.

 

"가"

"어?"

"피방 가라고"

"..."

"난 걍 야자 하러 감 내일 봐."

 

그럼에도 상황 좆같이 만들어버린다.

 

 

 

가방을 질질 끌고 교실로 돌아왔다. 야자 출석 담당인 애한테 출석부를 뺐어 내 이름만 체크했다. 가방을 걸고 문제집을 꺼냈다. 이어폰을 끼고 문제를 풀었다. 자지도 않았고 딴생각도 안 한다. 문제만 풀었다. 10시 종이 치고 느지막하게 건물을 나왔다. 주위가 시커멓다. 담배가 말렸다. 언제나 담배를 내주는 쪽은 전원우였다. 나는 담배를 뚫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뚫었는지도 몰라서 편의점에 들어갔다 트윅스나 들고 나왔다. 좆같네 진짜. 공원을 지나고 쇼핑센터를 지나고 신호등을 건너고.

 

집으로 곧장 가는 길 대신 빙 돌아가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생각이 많아지면 일단 걷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 천천히 생각을 해보자. 권순영은 게이다. 권순영은 전원우를 좋아한다. 전원우는 이지훈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지훈은 헤테로다. 확실히. 전원우는 게인가? 얘 학교에서 좀 유명하고 여친 시귄단 얘긴 들어본 적 없고 종종 고백받았다는 얘기 들었고 또 이지훈을 보고 그딴 얼굴을 했고 음. 어쨌든 지금 권순영 짝사랑에 가망이 존나 희박하고 전원우 짝사랑은 더 희박하고. 안쓰럽고 딱하네, 물론 내가.

 

 

이 새끼들은 그렇게 갔는데 어째 연락도 한통이 없다. 서운하고 좀 비참하고. 낮은 기분이 정수리부터 타고 내려와 발끝까지 고여 넘실 거리며 몰아쳐오는 것들이 감당이 안되는 거라 더운물에 빠진 것 마냥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관계와 그것의 의미 속에 생각이 갇혔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 관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감정을 소비하야 함을 뜻해 권순영은 갈무리하지 못해 작게 조각난 제 감정들이 안쓰럽고 처연하다. 이럴 때 시원하게 눈물이라도 짜면 속이라도 시원하겠구만 안구가 짜기만 하고 흐르진 않는다. 지친다. 수능이 코 앞이고 신경 써야 할 일은 이딴 무의미한 감정들이 아닌데 빈 곳을 찾아 그것들이 들어찬다. 고여 서서히 썩어 곧 있으며 악취를 풍길게 뻔하다. 내 마음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방이 무겁다. 눈 앞에 닥친 것도 무겁고 마음에 가라앉은 것들도 무겁다. 온통 무거워 가라앉기만 한다. 다 그만두고 싶다. 감정이 좀 사라졌으면 했다. 소비해도 소비해도 그것은 줄어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번식해 더 부풀기만 했다. 담배가 간절하다.

 

동 앞에 지훈이 있는 것은 가라앉은 감정을 요동치게 했다. 그것은 죄책감이기도 했으며 반가움이기도 했으며 서운함이기도 했다. 늘 그렇듯 동시다발적으로 뚜렷한 이유를 이성적으로 추론할 수 없고 그저 감정이 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요동쳤다.

 

집에 들어갔다 나온 건지 추리닝에 얇은 후드 하나 걸치고 온 모양새여서 속을 혀를 찾다. 맨발에 슬리퍼 사이로 가로등 빛을 받은 허연 살결에 제가 다 추웠다. 좀 따듯하게 입고 다니라니까.

 

 

"서운했냐"

 

가망 없는 짝사랑을 왜 1년 씩이나 질질 끌었는지 생각해보면 이지훈의 저 단단한 눈빛이 한몫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지훈은 비겁하지 않았다. 걔는 피하지도 않았고 뭐든 정면 돌파였다. 명료하고 확실한 걸 좋아하고 속에 꿍처둔 찌꺼가 같은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면 못 견뎌하는 인간. 그 점이 사랑스럽고 부러웠고 또 못 견디게 아팠다. 우리 관계에 있어서 이지훈은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숨기기도 했고 사고방식 자체가 그쪽으로 안 돌아가는 뼈까지 헤테로 여서도 있었다.

 

"너한테 서운한 거 아니야 알잖아"

 

이지훈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 자리에 내가 없던 것도 아니고 같이 있었는데 너 기분 상한 거에 내가 잘못한 게 조금이라도 있었을 거 아니야"

" 뭐... 그냥.. 내가 예민하기도 했고, 알잖아 9모 끝나고 상담하고 어쩌구 좀 힘들었나 봐"

"야"

"응?"

"혹시 전원우......"

 

이지훈이 입술을 물었다. 뜸 들이는 성격이 아는 애가 뜸을 들이니 속이 탔다. 뭐 전원우 왜 이지훈이 알리가 없잖아 나도 오늘 자각한 건데 이지훈이 설마

 

"전원우 싫, 아니 불편하냐?"

 

아, 딱 이지훈다운 추측.

 

".. 아니야~"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유치한 거 나도 아는데, 그래도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하고 풀게 있으면 풀어야 될 거 아니야 그래야 서로 편하지"

"....."

"내 말은... 넌 좀 담아두는 경향이 있으니까"

 

맞는 말이었다. 담아 두는 경향이 있고 솔직히 그걸 표출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했을 때 상황이 악화되는 게 뻔한 경우는 더더욱. 이지훈은 쌓아두는 게 멍청한 짓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글쎄, 그렇게 떳떳할 수 있는 감정만 품은 이지훈이 부러울 뿐. 또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니 말대로 죄 까고 본다면 어떨까, 그걸 가장 감당할 수 없는 건 너일 텐데.

 

이지훈 눈이 단단해서 담배가 말렸다. 내가 오만한 걸 수도 있다. 그치만 지금의 지훈은 퍽이나 순진해 보였다.

 

"내가 불편하다고 하면? 그럼 전원우랑 쌩까기라도 할래? 니 말대로 유치하게"

"쌩까는 건 해결이 아니지, 내 말은 풀고.."

"지훈아 수능 두 달 남았어 솔직히 난 이런 걸로 감정 소모하기 싫고 시간 쓰기도 싫다. 미안 들어가 볼게"

"야 권순영!!!!!"

 

지훈을 등지고 걷는데 추위로 벌건 손이 어깨를 잡아왔다.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달싹거린다.

 

"권순영 나는 솔직히.. 아니 당연히 네가 더 중요해 알지? 너 안힘들었을면 좋겠다."

 

심장이 찌르르 울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 권순영 진짜 너 그러면 쓰레기 새낀데. 그런데도,

 

명백한 것. 이지훈한테 권순영이란 존재가 전원우 보다 훨씬 크다는 것. 그리고 이지훈 앞 뒤가 꽉꽉 가로막힌 뼈까지 이성애자. 재작년 일 년 넘게 한 마음고생 촤르륵 지나간다. 그 마음고생 똑같이 할 전원우가 지나간다. 마음만 먹으면 전원우 멘탈 갈리도록 괴롭힐 수 있겠단 시커먼 쾌감들. 권순영은 그것들을 일단 주워 담고 애써 고개를 가로졌는다.

 

"아니야 그냥.... 내가 예민해서 그래 신경 쓰지 마"

 

미심쩍은 눈초리가 권순영을 훑는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그것들이 바로 저 옆에서 행해지는 것들이라는 데는 자각이 없지만 이지훈이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지금 이지훈 속에 저 찝찝함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그럼 내일 전원우랑 말 좀 해보고 꼭 알겠지?"

"그래 그래 들어가 빨리 추운데 또 맨발로 나와가지고"

"엉 그래 낼 봐"

 

아. 기분 더럽게 째지네.

 

 


 

달라진 건 없었다. 표면적으로. 그다음날 권순영은 어색한 전원우 사과를 받았고 저 또한 어색하게 웃어준 뒤 이지훈 끼고 욕지거리 섞인 농담이나 따먹으며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하지만 늘 그렇듯 관계 변화의 시작은 아주 아주 미묘한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걸 기민하게 파악할 만한 사람은 그 관계에 목을 매는 놈이거나 관계 돌아가는 꼬라지를 이미 파악한 놈, 혹은 둘 다인 권순영. 한번 확신을 하고 보니 전원우 하는 꼬라지가 죄 보인다.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을 만큼 노골적이다. 뭐든 말에 태클부터 거는 말투는 이지훈 앞에서 온순한 맞장구로 변했고 별거 아닌 말에도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한다. 시선이 한참을 입술에 머문다거나 또 그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는 얼굴 다른 애들과 대화 중인 이지훈을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빼내 온다던가 집요하게 어깨를 놓지 않는 손과 늘 이지훈 쪽으로 향하는 무게중심. 자습시간 문제집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도 이지훈 움직임에 반응하는 모습 같은 것들. 그리고 그걸 죄다 지켜보는 권순영 쫙 찢어진 눈깔만큼이나 모나게 어딘가가 벌어진다.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전원우 그 새끼 가망 없는 짝사랑이 어떻게 진행되던 말던 간절하게 신경 끄고 싶었다. 그게 될 리가 없다. 곧게 향하는 그 순애보 같은 꼴을 보면서 아랫입술 좆창내지 않을 수가 없다. 안 보고 싶고 안 듣고 싶고 상처 받고 싶지 않고 뻔히 알면서 굳이 권순영은 또 그 틈바구니에 껴 죄다 눈에 담지 않으면 뒈질 것처럼 굴었다. 왜 사서 고통받는지 알 길이 없다. 퍽퍽 꽉 매인 속을 친다. 그냥 신경 한번 끄고 고개 한번 돌리고 귀 한번 막으면 될 일이었다. 아니 그래도 가슴이 종종 툭툭 떨어지는 마당에 신경까지 죄 곤두 세우고 전원우 삽질을 보는 꼬라지가 가관이었다. 

 

권순영은 이지훈만 콜라 뽑아 주면 이상하게 보일까 봐 딸려오는 제 몫의 콜라를 쥐었다. 매번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해 결국 가방에 넣어놨다 집에 와 냉장고에 처박히는 뻘건 캔콜라들. 이지훈을 사랑해 마지않는 그 마음에 딸려온 성의와 관심이 캔 뚜껑마냥 작고 날카롭게 권순영 손가락 근처에 자리 잡았다. 방심하면 베인다. 그냥 버리면 될걸 버려지지가 않아 그 쓸모없는 감정을 쥐고 내내 긴장상태다. 그나마 숨통이 트일 때가 남 챙기는 법이 없는 이지훈이 저를 챙길 때였다. 아니 정확히는 한쪽으로 치우친 이지훈의 챙김에 서운함을 숨기며 씩 웃고 마는 안경 너머 저와 똑 닮은 전원우 고 눈깔이 보일 때. 그날 이후로 지훈은 제가 뱉은 말이 있어서였는지 나를 조금이라도 더 챙기고 보려 했다. 그래 봤자 미묘하게 더 챙겨 주 거나 좀 더 나를 우위에 두는 정도였지만 전원우가 못 느낄 리 없었다. 셋 중 관계에 가장 목매는 건 전원우였다. 묘하게 겉도는 느낌 같은 거. 거기다 함께해온 시간 차이에서 오는 소외감도 없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정도 친구 간에서도 느낄 수 있는 서운함 정도야 눈치 빠른 이지훈도 못 느낄 리 없었다. 미묘하게 엇갈리는 것들을 다들 알았다. 이유나 무게를 모를 뿐이지. 셋의 성격 탓이었는지 수능 탓이었는지 또는 이지훈 나름의 나를 향한 배려였는지 표면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다들 불명확한 무언가를 주고받는 채로 수능이 코 앞까지 닥쳤다. 수능이과 함께 보류되고 쌓여온 감정들이 파도가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 크기가 얼만할지는 닥처봐야 알 일이었다.

 

 

 

 

 

 

 

 

 

 

 

 


수능. 대학수학능력시험. 개좆같은 그거, 그게 끝났다. 안 끝날 거 같던 수험생활이 끝났다. 와 씨발 끝났어!!! 내가 외쳤고. 과연. 전원우 불퉁한 목소리로 딱딱하게 내뱉었다. 재수각 자살각 씨발. 이지훈이 논술시험지를 뜯어 먹으며 말했다. 야 미친놈아 그거 먹지 마. 놔 씨발 으아악!!!

 

수능만 끝나면 끝날 줄 알았지. 그게 그렇지가 않았던 거지.

 

 

 

 

 

개새끼

의 동기

 

   

이새개새4

w.허이테

 

 

 

 

 

 

 

입시라는 게 참 알 수가 없다. 셋 중 공부를 제일 못하는 내가 수시 최저 맞추고 일찍이 합격 통보를 받아 띵가띵가 노는 반면에 이지훈이 눈 벌겋게 돼서는 논술시험지를 뜯어 먹고 있는 꼴이 그랬다. 전원우는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야 넌 논술 없냐? 이지훈이 샤프를 달각이다 책상에 발 올리고 폰 뿅뿅 거리는 나와 전원우가 거슬렸는지 눈알을 부라리며 물었다. 

 

"내가 뭔 논술이여 수학도 못 하는데."

 

내 말에 이지훈이 전원우 쪽으로 몸을 가울이며 묻는다. 전원우 넌? 너 논술 2개 썼잖아. 몸과 함께 뒤로 아슬아슬하게 기울여진 이지훈 의자를 내가 꽉 움켜쥐었다. 의자가 전원우 쪽으로 더 기울여 지지않고 기우뚱하다가 제자릴 찾는다. 

 

전원우가 음산하게 대답했다. 이지훈, 넌, 최저 맞춰서 논술 공부하고 있단 자체를 감사히 여겨라. 

 

 학교는 오전 수업까지만 했고 이지훈은 학교에서 논술 예상 문제집을 뜯어 먹다 히게 질린 얼굴로 논술학원으로 향했다. 야 하루만 째 너 좀비같어. 내 말에 이지훈이 진짜 좀비마냥 질린 얼굴로 답했다. 야 씨발 논술학원 일주일에 백만 원이야. 얼른가 지훈아 늦겠다. 이 개새끼가. 

 

 

그 탓인지 혹은 덕인지 전원우와 둘이 붙어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지훈이 종종 붙어서 헛소릴 주고 받는 나와 전원우에게 묘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가끔은 그 시선이 곧게 전원우를 향한다. 나는 눈치가 빠르고 나는 이지훈은 잘알고 나는 이 관계에 예민하다. 나도 모르게 또 아랫 입술을 좆창낸다. 피가 줄줄흐르면 전원우가 온갖 인상을 쓰고 휴지로 내 입술을 꾸욱 누른다. 그걸 이지훈이 샤프심 꼭지를 잘근자근 씹으며 보고 내가 다시 그런 이지훈을 관찰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친구일 수 있을까, 그걸 니들도 고민하고 있을까.

 

 


 

몇 개월 전까지 전원우와 쏘다니던 다른 반 멀대들이 학교 째고 피방에나 가자며 몇 번 반으로 찾아왔지만 전원우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얘 지금 나 친구 밖에 없어서 안됨. 엉? 그럼 그 친구도 같이 피방 가면 안 되냐? 얘 게임 안 함 주말에 톡해. 어엉 그래 톡할게.

 

 이런 식의 상황이 한 두 번 반복될 때마다 묘한 기분을 어쩔 도리가 없는 거다. 배려와 친절 그리고 아마도 우정. 굳이 이 묘함에 이름을 붙이자면 죄책감 비슷한 어떤 것이었다. 전원우가 이지훈을 좋아한다는 걸 눈치챈 그날부로 전원우가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에 동기를 이지훈한테서 찾았다. 피해 의식이 지나쳤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철저히 이지훈 때문에 나와 이지훈 사이에 끼어든 거라면 이지훈이 없는 권순영과 전원우의 사이는 전원우 입장에서 꽤 부질없는 관계였다. 게임에 환장하는 걸 뻔히 아니 사실상 걔가 날 배려하는 대신 피시방에 간데도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전원우의 말처럼 내 친구가 걔뿐인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반 안에서 내가 없으면 친구가 없는 쪽은 전원우니까. 가슴 언저리를 콕콕 찔러대는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교 후에도 우리는 분식집을 노래방을 쏘다녔다.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쏘다니다 전원우가 감기에 걸린 후론 자연스럽게 전원우의 집까지 발을 들였다. 지훈이 논술학원에서 썩어가는 이주 동안 사실상 그동안의 시간보다 더 붙어 다녔다. 계속해서 머리를 때리는 질문은 하나다. 얘는 지랑 내가 진짜 좋은 친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진짜 좋은 친구라도 된다기엔 둘 사이엔 많은 게 부족했다. 관계는 가벼웠다. 형용할 수 없이. 오가는 핑퐁은 정말 핑퐁이 다였다. 농담 따먹고 따먹기. 대화는 장난으로 시작해서 장난으로 끝났고 좀만 진지해질 분위기도 전원우의 헛소리로 쉽게 뭉개졌다. 밀도를 따지자면 처음 말을 섞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어둑한 공원에서 맞담 피던 그때가 차라리 빽빽했다.

 

불만투성이였다. 이따금 그것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툴툴거리고 짜증 섞인 비난들을 장난처럼 흘려보냈다. 특히 전원우의 다정에 예민했다. 신경 쓰는 척은, 내가 이지훈 대용이냐? 꽤나 노골적인 언사에도 전원우는 어리둥절해서 하지도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그냥 좀, 귀찮아했다. 뭐래. 가볍게 넘겼다. 다시금 그것이 심장에 얹혔다. 너 정말 나와 무거워질 일말의 성의도 없구나.

 


 

 늘 이맘때쯤 들려오는 얘기였지만, 올해는 정말 애지게도 추웠다. 일주일을 내리 붙어 다니고 난 토요일이었다. 주말에 친구들과 피시방에 간다던 말과 다르게 미용실이라는 내 말에 꽁꽁 싸매고선 미용실까지 찾아왔다. 우리는 제법 심각하게 미용실 책자를 뒤적였다. 나 탈색할래 전원우 넌? 음, 난 그냥 머리만 자를래. 무슨 색 하지. 것두 생각 안 했냐 띨빡아. 좀 닥쳐봐. 몇 시간 뒤 샛노랗게 탈색된 머릴하고 패딩에 파묻혀 나와 바람이 불 때마다 아악!! 소릴 지르며 요란하게 전원우 집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오. 며칠 봤다고 익숙해진 전원우 부모님께 꾸벅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전기장판부터 켰다.

 

"야 너 아주 니 집인양 자연스럽다?"

"내가 또 적응력이 끝내줌."

"아 야! 양말은 벗고 들어가라고-!"

"아앙."

"아앙은 씨발 도랏냐? 벗으라고."

"벗-어? 아앙."

"너 그놈의 아앙 한 번 더 하면 추방이야."

 

그러곤 이와 비슷한 헛소리가 반복됐다. 추운 만큼 해가 성큼 짧아져 있었다.

 

"으아 벌써 해진다."

"몇신데"

"한 6시?"

"너 안가냐"

"아 전기장판 넘 따땃행"

"자고 가실?"

"엥"

"뭐"

"나 자고 가?"

"싫음 걍 가"

"옷도 없는데?"

"내꺼 입어"

"칫솔도 없는데"

"새거 꺼내"

"속옷은"

"씨유 가서 하나 사와"

"엥"

"뭐"

"너 왤케 나 좋아해"

"돌았냐"

 

컥컥 전원우가 목에서 가래 끓듯 이상하게 웃었다. 웃기냐 저 빡대가리 새끼.

전원우가 방 밖으로 나갔다. 엄마 권순영 오늘 재워도 되지-. 어 그래라 이불 꺼내 줄까? 니들 저녁은? 우리 아까 햄버거 먹어서 이따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을게. 그래 엄마 아빠는 지금 나간다.

 

밖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어디 나가셔?"

"엉 오늘부터 친구들이랑 부부동반여행 가심"

"새끼 그래서 자고 가라 했구만, 애기냐 우리 원우 액히야? 혼자 못자요옹?"

"너 콧소리 금지 어우 씨발"

"튕기기는"

"야 너 속옷이랑 라면 사러 가자 옷 입어"

"시러 니나 가"

"니 속옷 사러 가자는 거거든 새끼야"

"아 기차나~ 암거나 사와~ 나 자고있을랭"

"주인도 없는 남의 집에서 뭐 하려고 참내"

"내가 니 방에서 하긴 뭘하냐 참내"

 

"지랄 말고 얼른 옷 입어라"

 


 

진짜 씨발 너무 한거아냐? 이렇게 추울 일이야? 아직 11월인데 아 미친 미친 마빡 얼 거 같아. 한기가 패딩으로 스민다. 기분이 불쾌할 정도로 추웠다. 전원우 얼음장같은 손이 목을 불쑥 쓸었다. 씨발 뒤진다. 아 나 동상 걸릴 거 같아 한 번만 봐조. 몸에서 대가리 빠지고 싶지 않음 빼라. 아아.

 

편의점엔 별개 다 판다. 전원우가 일렬로 세 개 쭉 늘어선 흰색 파란색 속옷들을 보며 손으로 턱을 쓸었다. 이 흰색이 어울릴 거 같아. 너무 얇아 보이는데. 왜 저거 사 잘 어울릴 거 같다니까. 니가 저거 입은 거 볼 것도 아니잖아 좀 꺼져 야 그걸 왜 집어 야, 야! 네가 사줄 게 순영아. 그걸 니가 왜 사줘 미친놈아-!

으아.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진짜 씨발 나 죽을 거 같아. 안봐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갈 게 빤했다. 전원우가 편의점 알바랑 뭐라고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피곤해 보이는 남자에게 전원우가 볼이 움푹패이게 웃는다. 남자가 퉁명스럽게 손을 휘휘 졌는다. 이제 꺼져 빨리. 말과 달리 귓가가 발긋하다. 의문스러운 눈으로 둘을 훑는데 전원우가 별 말 없이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자. 누구야? 어 아는 형. 전원우 주머니 사이로 빨간 담뱃갑이 삐죽 튀어 나와 있었다. 헐 걸리면 저 형 짤리는 거 아니야? 괜찮아. 아니 너가 괜찮은 거 말고 저 형이- 아아 빨리 가자. 

 

오랜만에 오는 장소다. 숨어 담배 빨던 그 나무 밑. 나무에 기대 스며는 전원우 역광으로 가로등이 비치는 거기. 전원우 아무렇지 않게 내 입에 지가 물던 담배를 물려줬던, 아무렇지 않게 수면제 얘기를 하던, 전원우 늘 아무렇지 않고 나 늘 심장이 딱딱거리는, 누렇다 못해 빨간 가로등 아래 연기자욱한던 거기. 치직치직. 전원우 마디가 얇은 손이 성능 안 좋은 노란 지포 라이터를 비빈다. 바람에 불이 날아간다. 전원우 엄지가 발갛다. 얼굴은 그림자에 까맣다. 불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얼굴에 빨간빛이 비췄다 이내 명멸한다. 명멸한다. 눈앞이 검다. 흰 막대에 불이 붙고 연기를 뱉어 낸다. 나에게 내미는 담배에 설레설레 고개를 져었다.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 여름과 이 겨울. 우린 뭐가 달라졌지. 전원우와 나를 가려주던 나무는 입이 다 떨어지고 버썩 말라 우리 하늘 아래 적나라하게 들춰진다. 까발려진다. 어설프게 차오른 달이 흐리게 빛난다.

 

 전원우가 빨던 담배를 내 입술께로 가져다 댄다. 싫어. 왜. 냄새나. 괜찮아 들어가서 씻자. 싫어. 전원우 얼굴이 안 보이고 담배가 전원우 호흡에 맞춰 타들어 간다. 가까웠다. 지나치게. 그리고 뜬금없게. 원래도 이렇게 가까이 서 있었나? 전원우가 한 손으로 내 뒤 나무를 짚었다. 담배 냄새가 역하다. 전원우 손을 입가로 끌었다. 전원우가 입에 담배를 물려 준다. 새끼 필 거면서 튕기기는. 한 모금을 빨고 바닥에 떨궜다. 그걸 왜 떨궈 아깝게.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낮았다. 추웠다. 손가락이 얼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전원우처럼 손을 걔 목에 갔다 댔다. 미적지근했다. 내 손 위로 전원우가 손을 겹쳤다. 찼다. 이상했다. 지금 이 상황이 얘랑 내 자세가. 얼굴이 가까워졌다.

 

"권순영"

"…어?"

"알아? 나 눈치 되게 빨라"

"근데"

"근데 아직도 구분이 잘 안 되네"

"뭐가"

"니가 좋아하는 게 나야 이지훈이야."

 

심장이 딱. 

멈춘다.

 

 


 

안 좋은 습관 중 하나였다. 이지훈이 싫어하던, 몰리면 도망치고 본다. 내가 나를 대변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입을 다물고 자리를 뜬다. 그래서 3년 동안 이지훈이 나를 질리도록 보면서 습득한 건 나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 싸울 때든. 어쩔때든.

 

전원우를 밀친다. 거의 뛰다시피 공원을 빠져나온다. 전원우가 팔을 잡는다. 욕지거릴 뱉으며 뿌리친다. 이번에는 양어깨를 잡아 온다. 다시 밀친다. 퍽 소리가 난다. 전원우가 인상을 쓰고 내 팔을 잡아끈다. 전원우네 동 앞까지 질질 끌려온다.

 

"왜 그러는데."

 

띵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전원우가 다시 내 손목을 끈다.

 

"뭐 왜 그러는데?"

"내가 못 물어 볼 거 물어봤냐?"

"그럼 이게 물어볼 만한 거냐?"

 

전원우 미간이 패여있고 입술을 물고 있다. 저 표정을 안다. 욕지거리를 참을 때의 표정. 이제 나는 억울하다. 왜, 왜 니가 화가 나?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릴 때까지 전원우는 말이 없다. 내 입에서는 그새를 못 참고 욕이 몇 마디 흘러나온다.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린다.

 

"어차피 결국 누군가는 알게 될 일 아니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전원우가 내린다.

 

"그럼? 끝까지 말도 안 하고 좋은 친구 흉내 낼려고했어?"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힌다. 닫힌 문 사이로 전원우가 가려진다. 이대로 다시는 전원우를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닫혀가는 좁은 틈새로 전원우 손이 들어온다. 문이 전원우 손에 부딪치고 다시 서서히 열린다. 역광 때문에 혹은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전원우가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종종 보지 못했던 얼굴.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다 열렸다 또 다시 닫히려 할 때까지 서로를 응시한다. 저 얼굴은 지금 어떤 감정을 품고 있나. 나의 말과 성의를 뭉개던 너는 반대로 지금 할 말이 많아 보이고 알고 싶은 게 많아 보이는데, 너는 대체 어디까지 눈치챘으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한 것일까. 패인 미간과 찌푸려진 콧잔등, 아랫입술을 뭉개고 있는 윗입술, 똑바로 나를 향하는 꺼먼 두 눈동자. 시선이 뜨겁다. 몸에 열이 오른다. 시야에 네가 가득 찬다. 아 그리고 지금, 심장이 눈치 없이 딱딱거린다.

 

 

 손이 나를 엘리베이터에서 끌어내린다. 삑삑삑삑 조급한 손이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잡힌 손목이 뜨겁다. 신발을 벗고 현관 바로 옆에 있는 제 방으로 나를 끈다. 손목이 놓인다. 전원우가 패딩을 벗어 의자에 던진다.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끌어내 내 패딩도 벗겼다. 뭔지 모를 것으로 전원우 손이 잘게 떨린다.

 

"무슨 뜻이야."

 

내 목소리가 볼품없게 떨렸다. 전원우 얼굴을 보려 고개를 들자 다시 한번 지나치게, 또 뜬금없게 가까이에 있다. 발끝이 닿을 것만 같다.

 

"뭐가"

"친구 흉내가 무슨 뜻이냐고"

"왜 못 알아듣는 척해 너 눈치 빠르잖아 권순영"

"……."

"너 알고 있었지 내가 이지훈 좋아하는 거"

"이 미친 새끼가……. 너 진짜…." 

 

손이 다시금 목을 집아온다. 차가웠다. 전원우가 이번에는 입꼬리를 올려 보인다. 볼이 움푹, 패인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 얼굴. 목을 감싸던 손가락이 내 턱을 아래서 민다. 턱이 들어 올려지자 입술이 닿을 것 같다.

 

"그래서 순영아 나야 이지훈이야."

 

전원우 발등을 밟고 올라서며 입술을 맞댄다. 방금 지 입으로 이지훈이 좋다고 말한, 사랑하는 입이 입술을 물어온다. 전원우 목구멍부터 큭큭거리는 웃음이 느껴진다. 손이 허리를 감아온다. 전원우 뒤통수를 너머로 까맣게 변색된 밤에 곰팡이처럼 조명들이 피어올랐다. 편의점에서 그 남자의 발긋한 귀 끝이 떠오른다. 속이 역했다.

 

이제 권순영 정말이지 자기 사랑이 치욕스러워 죽고 싶다.

 

 

 

 

 

 

 


 

진짜

개새끼

는 x군

 

 

 

 

이새개새5

w.허이테

 

 

 

 

 

 그 뒤로 딱 일주일간, 이지훈이 논술학원에서 썩고 전원우네 부모님이 여행가신 동안 전원우네 집에서 우리는 뒹굴었다. 아마도 나와 걔의 역량이 되는 한 가장 난잡하게. 그날 씻고 나온 나를 보며 전원우가 히죽거렸다. 내가 잘 어울릴 거라고 했잖아. 편의점 싸구려 흰색 속옷을 눈깔로 핥았다. 씨발 미친놈이. 예쁘네. 눈가가 휜다. 진짜 개새끼가 아닐 리 없다. 아 뭐야 그럼 편의점에서 그거 나 꼬신 거였네. 새벽까지 물고 빨고 뒹굴고 녹초가 돼서 등교한다. 이지훈이 미심쩍은 얼굴로 묻는다.

 

"왜 논술 준비하는 나보다 니들이 더 피곤해 보이냐"

"전원우 밤새워서 게임을 했겠지"

 

괜실히 찔려 뱉는 말에 전원우가 키득거렸다.

 

"아 게임이 나를 안놔주더라고"

 

아 이 미친놈이. 전원우가 구린 내 표정에 왜? 물으며 이지훈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쓰다듬는다. 몇 시간 전까지 내 좆을 주물 거리던 손으로.

 

사실 이쯤 되니 뇌가 사고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전원우 이 미친놈이 나랑 왜 잤지. 다시금 편의점에서 본 그 남자가 떠오른다. 발간 귀 끝. 교실 거울에 비친 나. 얼굴이 빨간. 괜찮다고 하던 전원우. 괜찮아? 진짜 괜찮을까.

 

우린 전원우 침대에서 뒹굴었고 그 남자가 알바하는 편의점에서 콘돔을 샀다. 전원우의 웃음에도 남자의 귀는 더 이상 발긋해 지지 않았다. 남자는 그냥, 좀 피곤해 보였다. 우리는 이따금 시선이 마주쳤다. 남자는 혀를 찼다. 저 남자는 전원우를 좋아했을까? 나는 속으로 남자를 비웃었다.

 

 


 

 

이지훈 논술이 끝났다. 끝나는 날 우리는 전원우네 집에서 치킨을 시켰다. 전원우가 목소리를 깔고 맥주도 시켰다. 나랑 이지훈이 킬킬거렸다. 야 근데 민증까보라하면 어떡해. 괜찮아 내가 몇 번 해봤는데 한 번도 민증까라고 안 함. 어이 양아취 새끼.

 

전원우가 냉장고에서 소주병들을 꺼냈다. 미친 마셔도 되냐? 아 몰라 걍 마셔. 니 낼모레 부모님 오시면 좆되는 거 아니야? 내 물음에 전원우는 멍한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아 이미 난 좆됐어.

 그날은 전원우 마지막 남은 수시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고 결과는 예비 108번이었다.

 

"원우야 이건 아무래도 부모님 오시면 사죄의 의미로 백팔 배 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내말에 이지훈이 전원우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리며 웃는다. 죽인다 진짜. 

 

"전원우 정시로 가면 권순영이랑 같은 데 가는 거 아니냐?"

 

이지훈이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전원우를 놀린다.

 

"아 미친 자존심 상해."

"얼-그렇게 공부한다고 유난 떨더니 나랑 같은 학교"

 

닥쳐라 진짜. 전원우가 쏘아붙이곤 먼저 맥주를 들이킨다. 그후로 쭈욱 알콜이 들어갔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처음 제대로 마시는 알콜이 그렇게 달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졸리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전원우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그날 기억은 그게 다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집원우가 팅팅 부은 얼굴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이지훈은?"

"갔어 걔 오늘부터 가족 여행 간다고 아침에 일찍 간다 했잖아"

"아 맞다 근데 너 얼굴이 왤케 부었어"

"가서 니 얼굴부터 보지?"

 

세수하러 화장실로 비적 거리며 들어가니 몰골이 가관이었다. 아 미친 침 자국.

 

"너는 나 좋아하는 거 맞냐 어떻게 이런 몰골로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있냐"

"응 너 안 좋아해"

이 새끼가 돌았나

"구라치네"

 

비웃는 얼굴이었나? 라면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있어서 잘 못 봤다. 아, 내 자존심.

 

"야 권순영"

"뭐"

"좀만 기다려 줄 수 있냐"

"……. 개소리야"

 

전원우 손이 김치를 뒤적이는 내 손에 덮인다. 따듯했다. 고개를 들자 전원우 얼굴이 좀 발갛다. 손을 빼내고 상을 옆으로 치웠다. 훅 전원우 냄새가 몰려온다. 전원우가 나를 꽉 껴안는다. 우리는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주말동안은 집에 처박혀 지냈다. 전원우도 외가에 내려갔고 이지훈도 가족여행 중이었다. 다른 친구 놈들로부터 얼굴 좀 보자는 톡이 쏟아졌지만, 그냥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여러모로 정리가 필요했다. 관계를 이렇게 흘러가게 둬야 하나에 대한.

 

방학은 이주 남았고 아마 그 이후부터는 굳이 보고자 하지 않는다면 졸업 전 학교 나가는 일주일 정도가 강제로 보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전원우는 이지훈에게 고백할까, 그럼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 개새끼는 왜 이지훈을 좋아한다고 말한 입으로 나한테 키스하는 걸까. 단순 욕정 풀이? 굳이 따져 물은 적은 없었다. 아니 묻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면 그때는 어떡해 해야 될까. 또 전원우의 고백을 들은 후의 이지훈은? 만약 이지훈이 나와 전원우의 관계를 안다면? 이지훈이 나를 호모라고 경멸한다면? 그래서 이지훈과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그런 참을 수 없을 거 같았다. 병신같은 말이지만 이지훈은 내 고등학교 생활의 전부였다. 그리고 의미는 다르더라도 이지훈도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어떻게 해야 나한테 오는 피해를 최소로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지훈의 가장 친한 친구자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 전원우와의 관계를 이어갈 방법이 있을까? 모르겠다. 관계의 결정권이 내게 있지 않은 거였다. 씨발 내가 항상 약자지, 나만 좋아하고 나만 걱정하지. 좆같았다.

 

 


 

 

"부산 가자는데?"

 

방학식 전날이었다. 이지훈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말을 꺼낸다. 

 

"웬 부산"

"몰라 전원우가 바다를 보고 싶데"

"와 좆구려"

"그니까 얼어 뒤질 텐데"

"언제"

"내일, 방학식 날에 가자고"

"엥 갑자기? 부산까지 어느 세월에 가냐, 근데 너 고향 부산 아니냐?"

"나? 아닌데?"

"엥 너 고향 부산이잖아!!"

"뭔소리야 나 여기서 초중고 다 다녔거든?"

"어 왜 난 너 부산인 줄 알았지"

"머야 누구랑 헷갈린 거야 섭하다 진짜"

"어 그러게"

 

전원우가 교실 문을 열고 비적비적 들어왔다.

 

"부산 가자며 부산 어디 갈 건데"

 

내 말에 전원우가 눈을 느리게 꿈벅였다. 얼굴에 낭패가 번졌다. 아……. 그제야 뭐가 머리를 쎄게 치고 간다. 저 새끼가 말한 부산엔 내가 함께가 아니었네. 머리가 띵했다.

 

해운대 간다며. 해운대 거기만 갔다 와? 당일치기? 야 여기서 부산을 어떻게 당일치기로 가냐 방 잡아놨어. 오 전원우 돈 많냐? 수시도 다 떨어진 게. 지훈아 너도 아직 결과 안 나왔다? 닥쳐라. 둘이서 하는 말이 다른 시공간인 양 멀었다. 나는. 나는 대체 뭘 얻겠다고 얘네 사이에 끼어 있어? 권순영 너는.

 

 

"이지훈"

"어?"

"너 그거 언제 들었어?"

"뭘?"

"전원우가 바다 가자고 했던 거"

"어? 우리 술 마신 날이었을 걸?"

 

이지훈이 얼굴에 의문이 가득 뜬다. 전원우는 어땠지. 모르겠다. 교실을 나왔다. 좀만 기다려달란단 건 뭐였는데. 너한테 나는 대체 얼마나 가벼운 건데. 나를 보고 혀를 차던 편의점 남자와 그를 비웃던 나. 아 근데 나나 그 남자나 그냥 똑같았던가. 그냥 필요해서 이용해 먹은 거였던가. 이주. 14일. 그걸 나랑 꾸역꾸역 함께해 준 건 먹고 떨어지란 의미였나. 둘이 있어 줄 테니 나 이지훈이랑 둘만 있게 해달라고 눈치 없이 껴들지 말라는. 씨발 그걸 몰랐네.

 

근데 그걸 알아 처먹고 닥치고 있기엔, 그러기엔 권순영 심보가 전원우 생각보다 혹은 권순영 자기 생각보다 순순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무슨 일이냐는 이지훈의 말에 그냥 좀 피곤하다고 했다. 전원우한테서 톡이 계속 왔다.

 

"야 할 말 있으면 여기서 말로 해"

"나와 너 지금 오해했어."

"내가 뭘? 뭘 오해해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하라고 여기서 못할 거면 그냥 닥쳐"

 

언성이 높아지자 이목이 쏠렸다.

 

"야 니들 왜 그러는데"

"말해줘?"

"야 권순영"

 

전원우가 팔을 잡아끌었다.

 

"니들 뭐 하는 거냐고"

 

이지훈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 이지훈 화났네. 전원우를 봤다. 어쩔래 이제. 전원우가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린다.

 

"지훈아 잠깐만, 잠깐만 나랑 권순영이랑 풀게 있는 거 같다. 우리 풀고 그러고 다 말해줄게"

"와 다-말해주게?"

 

내가 빈정거렸다.

 

이지훈이 인상을 쓴다. 자기를 빼고 돌아가는 불편한 상황이 마음이 들지 않는 거다. 전원우가 내 팔을 끈다.

 

"우리 집으로 가"

"뭐? 지금?"

"그럼 학교에서 너랑 이지훈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랴?"

"……가"

 


 

"말해 뭐가 오핸데?"

"너한테 말하려고 했어 깜빡하고 있던 거야"

"아 그때 우리 술 마신 지가 언젠데 약속 전날까지 나한테 말하는 걸 까먹었냐? 존나 이해된다 진짜 걍 이지훈이랑 둘이 갈려고 했는데 내가 눈치 없이 끼어든 거라고 말해"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숙소까지 다 잡았다며 다 잡을 동안 나한테 말하는 건 까먹었다고? 왜 이지훈이랑 둘이 가서 고백이라도 하려고 했냐?"

 

전원우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와 씨발……. 너 진짜 고백하려고 했어?"

 

방금까진 화로 머리가 뜨거웠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난다.

 

"너 진짜 씨발 양심이란 거 있긴 하냐? 이지훈한테 고백하려고 부산 가자고 해놓고 그다음 날 나한테 기다려 달라고 해? 야 내가 우습냐? 너 좋다 좋다 하니까 좆나 만만해 보이냐고"

"……. 니가 만만했으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냐? 하……. 권순영 나는…. 그냥 잘 끝내고 싶었어 니눈에 내가 존나 개새끼로 보이는 거 아는데 이런 말 너한테 할 말 아니라는 것도 아는데 나 진짜 오래 이지훈 좋아했어 좋아하면서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나는 그냥 잘 끝내고 싶었다고"

 

안다. 전원우는 정말 힘들어했다. 혼자 기대했다가 제풀에 지쳤다. 매 순간 기대했다 매 순간 절망했다. 의도 없는 웃음에 행복해했고 선을 넘지 않으려 이 악물고 참았다. 이지훈이 원하는 제 모습에 저를 끼워 맞췄다. 웃기고 어른스러우며 선을 넘지 않는 친구. 전원우는 정말이지 이지훈한테 필요한 사람 되고 싶어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이지훈한테 필요한 자신의 영역이란 거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지. 심지어 이지훈 옆엔 내가 있었다. 이지훈이 가장 아끼고 가만 못 두는 권순영. 비교됐겠지. 초라했을 거다. 알고 있다. 아는데

"근데? 나보고 어쩌라고 너 이지훈 좋아 죽을 거 같은데 나보고 어쩌라고 나보고 도와주기라도 하라고? 내가 그렇게 착해 보였냐? 아님 너 좋다니까 호구로 보였어? 야 적어도 이지훈이랑 좋은 추억쯤으로 남고 싶었으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내가 이지훈한테 뭐라고 입털 줄 알고?"

"그런 거 아니야 너한테 내가 어떡해 그래 나는 내가 확실히 정리하고 너랑 시작하든 말든 하는 게 너랑 우리 관계에 예의라고 생각했어. 너랑 지훈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인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흐지부지 시작해서 너 계속 불안하게 하기 싫었던 거야"

"흐지부지 시작하기 싫었던 거면 애초에 나랑 자면 안 됐던 거라는 생각은 안드냐? 그리고 뭐 나보고 너 이지훈한테 차일 때까지 처기다리고 앉아있으라고? 나는 무슨 니 차선책냐? 플랜b야? 그러다 이지훈도 너 좋다 그러면 어쩔건데? 씨발 그럼 어쩔거냐고"

 

 

 

퍽, 전원우 가슴팍을 쳤다. 씨발 진짜 어떡하지. 이지훈도 전원우 좋다 그러면 나는. 아 울기 싫은데. 입술을 짖니겼다. 잘근잘근 씹었다. 전원우 표정이 울 것 같다. 내 팔이 잡힌다. 껴안아 온다. 뿌리친다. 전원우 눈깔이 시뻘겋다.

 

"울지 마"

 

내가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전원우가 내 볼을 잡고 말했다. 전원우 손이 젖는다. 울지마 응? 진짜 내가 미안해 제발 울지마 순영아. 입술이 내려앉는다. 눈물 자국을 따라 전원우가 입술을 찍어 누른다. 충혈된 눈에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 몸을 잔뜩 움츠리고 내 뺨을 잡은, 달달 떨리는 두 손. 전원우 손에 내 손을 겹쳐 올린다. 뜨겁다.

 

"울지마 권순영 부산 안 갈게 좋아했었단 얘기도 안 할게 응? 내가 미안해"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해"

 

눈을 치켜올려 시선을 맞췄다. 불쌍한 건 난데 더 힘들었던 건 난데 왜 전원우를 궁지에 몰고 있는 기분인지 모르겠다. 전원우가 다급하게 말한다.

 

"좋아해, 진짜야, 미안해 니 말대로 그렇게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어 니 마음 알고 그러면 안 됐어 미안해 이지훈이랑 정리하고 나면, 그럼 너랑도 못 볼 거 같았어 그래서, 내가 급했어, 내가 미쳤어 권순영, 울지마 제발 제발"

"다시"

"좋아해"

 

전원우가 입술에 쪼듯이 잘게 키스했다.

 

"다시 다시"

"좋아해 좋아해"

 

 

 

관계는 이미 망가졌다. 얼핏 그게 해피엔딩인 양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을 거다. 나는 우리 셋의 관계가 돌아가는 꼬라지를 그 누구보다 잘 꾀고 있다. 지금 이렇게 나와 전원우는 연인 사이가 되고 이지훈은 우리의 좋은 친구로 남는, 그런 해피엔딩이 불가능 할 거란 말이다. 나는 가끔 나도 소름 끼칠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 전원우는 심적으로 많이 몰려있었다. 가망이 안 보였겠지. 원래 이지훈은 그런 애니까. 걔의 변화는 느리고 더디다. 미묘한 차이를 눈치채기에 전원우는 너무 지친 상태였으며 이지훈을 잘 알지 못했다. 나조차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걔는 헤테로니까. 왜 그날 나는 전원우한테 키스했을까? 왜 그날 날 안는 전원우를 뿌리치지 않았을까? 나는 순간 내 본능적 영악함에 머리가 짜릿하다. 이지훈은 맺고 끊음이 확실하다. 우선순위는 더 확실하며 스스로 납득되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인 나랑 몸을 섞은 전원우 이지훈이 납득할리 없다. 오늘 나한테 부산 얘기를 안 꺼냈으면 어떻게 됐을까 둘이 부산에 갔다면? 전원우가 이지훈한테 고백했다면? 상상만으로 아찔하다. 맺고 끊음 확실한 게 좋겠지. 내일 부산에 가야겠다. 픽 헛웃음이 난다.

 

불쑥 전원우가 불쌍했다.

 

 

 


이새개새6(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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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개새6 完

우정과 사랑은 얼마나 다를까.  우정과 사랑을 단순한 애정의 카테고리로 묶는다면 우리는 우선순위를 따질 수 있을까. 따질 수 있다면 그것은 유의미할까? 전원우를 보며 참을 수 없는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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