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7. 05:27
*트리거 워닝
본 텍스트에는 신성모독, 강도살인, 익사, 홍수, 각종 혐오 표현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와종(窪終)골 산등성이 우물터 밑으로는 검은 계곡이 있었다. 말이 좋아 계곡이지 얕은 시냇가였는데 비죽비죽 튀어나온 돌부리 아래로 거무스름한 물이 졸졸졸 흘렀다. 과수원 장 씨네 할머니 말로는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었고 와종골에 하나 있는 산에 그 써글놈에(장 씨 할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이 씨 처녀무당집이 생긴 후부터 그랬다고 한다. 그 시작이 어찌 되었든 그 `써글놈에 이 씨 처녀무당집`이 생기고 벌써 그 처녀 무당은 무덤으로 기어들어가 없고 그 딸만이 애 하나 달랑 데리고 거기서 터를 잡은 지가 벌써 횟수로 18년이었으니 애 나이가 벌써 열아홉이었다. 그 애한테는 별명이 하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걔를 귀신 새끼라고 불렀다.
종말이 고이는 곳
전원우, 이지훈, 권순영
저번 주에는 소가 떼거지로 죽었다. 3일 전에는 고라니 사체 수십구가 비에 쓸려왔고 어제는 학교 운동장으로 날아가던 새 수백 마리가 떨어졌다. 비단 와종골만의 일은 아니었는지 유튜브며 트위터며 시끄러운데 이상하게 뉴스는 조용했다. 겨울이 분명한데 기이할 정도로 비가 내렸다. 날이 너무 습했다. 반쯤 어항에 잠겨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습한데 삼백육십오일 곰팡이가 가득하던 체육 창고에 곰팡이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와종골에선 몇 주 전부터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띄엄띄엄 터졌다. 그 덕에 원래도 외진 동네에 의지할 곳은 교회 뿐인 양 마을 사람들은 원우네 교회에 매일같이 나갔다. 일요일 뿐이던 기도 시간이 늘어났다. 평일 새벽 기도, 아침 기도, 점심 기도, 저녁 기도……. 왜 밤 기도는 없냐? 지훈의 빈정거림에 순영이 깔깔 웃었다. 원우는 안 웃어서 셋은 조용해졌다. "밤 기도도 있어?" "설마 진짜?" "아니 야간기도"
이제 와종골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학교도 시장도 아닌 손바닥만 한 반지하 주사랑 교회였다. 몇백 평짜리 과수원을 하는 오 씨 할아버지가 땅을 팔아 성금을 냈다고 했다. 와종골 이장은 아직 죽지 않은 소를 팔아 성금을 냈다. 전 목사가 하느님의 계시라며 소들의 떼죽음과 고라니 사체가 쓸려올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와종골 사람들은 전 목사가 하느님의 사자라고 말했다. 여튼 그 덕에 전 목사는 마을에서 제일 좋은 건물로 갈 거라며 부동산 업자를 끌고 다녔다. 그는 그제 서울에 갔다가 정장을 새로 맞췄다. 원우가 8살부터 타고 다니던 봉고차는 폐차장으로 끌려가고 빤짝빤짝한 비엠더블유가 반지하 교회 주차장에 어색하게 주차되어있었다. 전 목사가 서울에 갔다가 집에 돌아온 날 원우의 몫으로는 에어팟 프로가 깔별로 4개나 떨어졌다. 원우는 2개를 중고나라에 올리고 나머지 2개인 블랙이랑 미드나잇 그린을 지훈에게 건넸다. 이지훈은 저에게 에어팟을 건네며 지는 줄 있는 이어폰을 끼는 전원우를 얇은 눈으로 보다가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다음날 전원우는 권순영 귀로 꼽혀있는 미드나잇 그린색 에어팟을 볼 수 있었다.
"야, 씨발 콘돔 묶어 버리랬지 존나 던져두면 다냐?"
지훈의 짜증 섞인 욕설에 순영이 바지춤을 정리하다 말고 비죽 웃더니 지훈 손에 들린 이쁘게 묶인 콘돔을 봤다.
"그래 다음엔 니꺼처럼 이쁘게 묶어버릴게"
다음? 이지훈이 권순영이 습관처럼 뱉은 단어를 곱씹었다.
"순영아, 넌 왜 말을 그렇게 좆같이해?"
"너야말로 왜 나만 보면 숨 쉬듯이 시비야? 너가 전원우한테 하는 거 반만 했어 봐 내가 아주 너 땅에 발도 못 닿게 안고 다녔지"
"지랄하네 내가 널 들고 다니는 게 더 현실적이야"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순영은 못 들은 척 휘파람을 불었다.
"아- 나한테만 매정한 지훈이 내 맘도 몰라주는 나쁜 남자-"
음도 박도 엉망인 순영의 노래를 듣다가 지훈이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 웃기지 좀 마!"
웃는 지훈을 보며 순영이 따라 웃었다. 광대가 뽈록 올라오게 웃었다. 순영이 지훈의 머리를 끌어안는다. 지훈은 마주 끌어안는 대신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순영이 체육 창고 안 먼지 쌓인 거울을 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땀에 앞머리가 푹 꺼져있었다. 희끄무레한 거울로 지훈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교복 바지를 꿰어 입는 게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흰 다리가 시퍼런 교복 바지 안으로 하나하나 들어가는 걸 끝까지 지켜본 순영이 넥타이를 바로 했다. 지훈이 버클을 채우며 먼저 가라며 손짓을 했다. 푹 패인 미간에서 콧등으로 땀이 뚝 떨어졌다. 추워죽겠는 날씨에 땀나게 해댄 터라 셔츠도 축축했다. 순영은 먼저 가는 대신 거울 근처를 알짱거리며 지훈을 기다렸다. 샛노랗게 탈색된 머리에 귓구멍에 다다다 박힌 피어싱이 번쩍거리는 순영이 차분한 검정 머리에 셔츠는 대강 구겨 들고 검정 후드집업을 뒤집어 쓰는 지훈을 보다 말했다.
"전원우랑도 했냐?"
순영의 말에 지훈이 옷을 정리하다 고개를 들어 순영을 봤다.
"뭘 해"
"섹-스"
음절 사이를 길게 늘여 장난스럽게 말하는 순영을 보다가 지훈이 멍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순영이 이런 걸 물어 볼지 몰랐기에 생각해 둔 적절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원우와의 행위를 섹스라고 정의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생각했다. 몇 초간의 정적을 깨고 지훈이 입을 땠다.
"아니"
"그래?"
순영은 관심 없다는 듯 대강 고개를 끄덕이곤 체육 창고 문을 열었다. 지훈은 조금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집 가냐?"
지훈에 물음에 순영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꼽고 되물었다.
"넌?"
"교회 가야지"
"전원우가 같이 지네 교회 가재?"
"아니"
"어쨌든 너 걔 보러 갈 거지"
"알면서 왜 물어"
"니는 무슨 무당집 애가 교회를 다니냐"
"무당은 지랄"
지훈이 운동장의 모래 바닥을 찼다.
"너 아직도 보여? 그런거?"
오늘따라 권순영은 좆같은 질문만 던지기라도 작정한 듯 굴었다.
"뭐가"
"그…. 그런거, 미래인지 예지몽인지, 귀신인지 암튼......"
"보여"
"아……."
"니 미래도 보이는데?"
"뭐?"
지훈이 표정을 굳히고 순영을 바라봤다. 순영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존나 캄캄하다 순영아 어떡하냐"
지훈이 얼굴을 구기며 웃었다.
"아 뭐야 시바 개쫄았잖아!!!"
순영의 외침에 지훈이 소리 내 웃었다. 순영도 웃었다.
"쫄지마 이제 그런 거 안 보여"
말하는 지훈의 표정이 미묘했다.
일곱 살 때였나, 같은 반 친구가 과자를 줬다. 지훈이 좋아하는 거여서 지훈도 보답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가지 말라고 말해줬다. 왜 그래야 되냐고 묻는 친구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기가 봤다고 대답해주자 반에 있던 애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쟤네 할머니 무당이래 하고 소근 거렸다. 뭐? 소름 끼쳐! 조그만 남자애가 지훈을 향해 토하는 시늉을 했다. 지훈의 하얀 피부가 더 하얗게 질렸다. 그래서 그 친구는 지훈의 말대로 집에 돌아가는 대신 지훈과 동네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그리고 지훈과 함께 지훈네 집에 갔다. 지훈의 집은 마을과 동떨어져 산등성이 어귀에 자리잡은 무당집이었다. 가기 싫다는 친구를 억지로 끌고 지훈은 집으로 가는 산길을 올랐다. 그때만 해도 지훈이 그 친구보다 키도 크고 등치도 좋았다. 헉헉거리며 힘들어하는 친구를 집으로 데려갔다. 지훈의 엄마가 친구에게 부모님에게 허락은 받았느냐고 물었다. 지훈이 끼어들어 허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쳤다. 그날 새벽 친구네 집에 강도가 들었고 그 친구를 제외한 일가족 3명이 모두 살해당했다.
와종골은 좁은 마을이었다. 지훈은 친구를 못 보는 게 싫었을 뿐인데. 학교에선 애들이 지훈더러 귀신이라고 불렀다. 어떤 선생은 지훈에게 로또 번호를 물었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소문과 괴롭힘이 심해졌다. 다행이라면 노골적인 괴롭힘에 책상을 집어 던지고 쌍욕을 갈겨줄 정도의 성질머리가 지훈에게도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지훈 이름 석 자 앞에 징그러울 정도로 붙어오는 그 좆같은 `무당` 타이틀은 지훈도 어쩔 수 없었다.
이따금 고아가 된 그 친구는 지훈을 원망했다. 왜 살렸느냐고 물었다. 치 떨리는 얼굴로 파리한 안색으로 지훈을 원망했다. 차라리 죽게 놔두지 그랬어. 그때 나도 죽었어야해 사는 게 지옥이야 알어? 말하는 그 친구 어깨에 붙어있는 그의 가족들의 형상이 끔찍해서 지훈은 그 자리에서 그날 먹은 음식을 게워냈다. 너도 이게 보여? 묻는 친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게 그 친구가 미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알았기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지다 못해 껌껌하게 내려앉아서야 지훈은 빈 가방을 달랑 들고 주사랑 교회에 도착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얇은 캔버스화 안에 양말이 죄다 축축하게 젖었다. 지훈은 물이 고이지 않은 곳을 찾아 이리저리 뛰다 이내 포기하고 찰박찰박 소릴 내며 걸었다. 양어깨와 바지가 축축했다. 우산이 작은 크기가 아님에도 얼굴만 간신히 빗줄기를 피하는 모양새였다. 하늘은 비를 뿌리는 블랙홀처럼 시커먼 색이었다.
교회 건물이 꽤 가파른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교회가 반지하인 탓인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물이 줄줄 흘렀다. 지훈은 저 지하 한가득 물이 차 모두 금붕어처럼 동동 떠다니는 상상을 하며 우산을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교회 앞 거울에 비친 목에 순영이 만들어 놓은 자국이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지훈은 가방에 구겨 넣은 셔츠를 목에 두르는 걸로 어설프게 자국을 가렸다.
기도 시작 시간이 지난 건지 전 목사가 반질반질한 양복을 입고 낮은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전 목사를 따라 기도했다. 맨 앞에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원우가 있었다. 지훈은 원우가 준 에어팟을 끼고 맨 뒤로 자리를 잡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훈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그리고 메아리 울리듯 뒤따라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전 목사가 선창하는 기도를 사람들이 따라 한 것이었다. 뻐끔뻐끔 반복하는 그 모습이 꼭 계단을 내려오다 상상한 금붕어 같아 지훈이 혼자 키득거렸다. 옆에 앉은 권 씨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고 지훈에게 눈치를 줬다. 지훈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기도 내용은 갈수록 산으로 갔다.
기도 시간이 지나고 `예수님의 전언` 시간이었다. 물론 평범한 교회엔 그딴 시간이 없었다. 근데 와종골 주사랑 교회는 십자가 박은 무당집에 가까워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신도들은 제가 모시고 있는 예수가 예수가 아니라는 걸 몰랐을 뿐. 전 목사가 홍수가 올 거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지훈이 옅게 웃었다.
지훈은 더 듣지 않고 그냥 음악을 틀었다. 맥 밀러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grey skies and i`m drifting, not living forever. 지훈이 입을 뻐끔거리며 가사를 따라 불렀다.
목에 엉성하게 두른 셔츠를 풀어냈다. 저녁 기도가 끝나고 텅 빈 교회에 원우가 물이 새는 천장 아래에 있는 대야를 비우고 있었다. 지훈은 똑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들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원우가 깨끗이 비워진 대야를 다시 물이 떨어지는 곳에 두곤 축축한 바닥을 걸레로 닦았다. 원우가 굽힌 등을 곧게 피며 일어났고 지훈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오른쪽에 아직 빨간 멍 자국이 원우의 시선에 걸렸다. 원우는 말없이 구급상자에서 반창고를 꺼냈다. 반창고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원우를 보다 지훈이 발치에 대야를 발로 찼다. 대야가 물을 지훈의 바지에 토해내며 엎어졌다.
"아 실수"
원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전원우의 저런 표정이 좋았다. 약간의 짜증 섞인 일그러진 얼굴.
"이지훈"
"응"
세 음절을 뱉는 원우의 목소리가 찐덕했다. 너무 습해서 전원우의 낮은 목소리가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를 타고 진득하게 지훈의 귓바퀴를 감싸 안고 안으로 박혀 들어왔다. 지훈은 그것들의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훈이 성큼성큼 원우에게로 가서 반창고를 쓰레기통에 떨어트렸다. 원우가 안경 위로 이마를 짚었다. 그는 피곤해 보였으나 지훈은 지금 원우가 느끼는 감정이 피곤과는 전혀 다른 속성의 어떤 충동이란 걸 알았다. 지훈이 원우에게 바싹 붙었다. 늘 찬기가 감도는 원우의 손을 먼저 가볍게 감싸 쥐었다. 원우가 부드럽게 지훈의 손과 제 손을 분리하며 한 걸음 뒤로 몸을 옮겼다. 오늘도 완곡한 거절 의사였다.
"전원우 등신새끼"
"지훈아"
"나 좀 그만 불러"
그런식으로 좀 부르지 말라고. 생략된 말이 목구멍에서 나왔다 입천장을 할퀴고 다시 들어간다. 목구멍이 타들어간다. 원우는 대야에 물을 닦은 걸레를 짰다. 원우의 평이한 목소리가 물 떨어지는 소리를 뚫었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니가 그래 봐야 소용없어. 권순영, 걔는 우리를 절대 이해 못 해"
지훈이 인상을 썼다. 지훈의 세모난 눈이 원우 가는 눈과 마주쳤다. 지훈이 조금 큰 소리로 선언하듯 말한다.
"이해 바란 적 없어"
"그럼 뭔데"
"그냥 같이 있고 싶은 거야 넌 몰라 그게 어떤건지, 나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니가 뭘 알겠어."
지훈이 후드집업을 입고 빈 가방을 들었다. 니가 뭘 알겠냐니. 일곱 음절로 이뤄진 짧은 문장에 원우의 속이 뒤틀린다. 전원우와 이지훈 사이 매워지지 않는 간극의 90프로는 이지훈 이런 식의 화법에서 기인했음이 틀림없다. 아직 마르지 않은 우산의 물기를 탈탈 털며 지훈이 교회의 문을 당겼다. 원우가 서둘러 지훈을 잡아 제 패딩을 지훈의 어깨에 둘러준다. 지훈이 비뚤게 웃었다. 전원우는 다시 한 번 설득을 시도한다.
"지훈아 순영이는 우리랑 달라. 너만 상처받을 거야"
"야 전원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냥, 내 숨통 붙어있을 때까지 권순영 숨통 붙여놓는 거야"
이번엔 원우가 비뚤게 웃는다.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인 거 모르는 것도 아니였지만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짜증 나게 구네. 야 이지훈.
"권순영도 그러고 싶대?"
"뭐?"
"권순영도 죄다 뒤지는데 살고 싶냐고했냐고"
이따금, 그 친구는 지훈을 원망했다. 왜 살렸느냐고 물었다.
이지훈이 살렸던 친구는 천애고아가 됐다. 그를 키우겠다고 그의 작은아버지와 가족들이 와종골로 이사를 왔다. 사실 그건 좋은 핑계였고 서울에서 성금으로 사기를 치다 매장당한 그의 작은아버지가 도망치듯 숨어들어 온 거였다. 뒤진 형 보험료로 소소하게 작은 교회나 세울 할 계획이었던 그의 눈에 천애고아 새끼의 이상한 행동이 보인다. 야 너 귀신 보니? 그것들이 너한테 뭐라든? 와종골 주사랑 교회 예수님의 전언 시간. 신도들은 그 예수가 빼빼 마르고 옅은 색의 금속테 안경을 썼고 눈이 가늘고 어깨가 구부정하다는 걸 알까?
"말해봐 권순영 의사가 조금이라도 반영된소리야?"
씨발 전원우. 대체 왜 아직도 날 원망해.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학교는 휴교령이 떨어졌는데 순영은 기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어젯밤 서울에 있는 누나를 보러 기차를 탔다. 그런데 지금 와종골은 물이 무릎까지 차있어 기차고 차고 뭐가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가 서울까지 잘 갔을까? 전화가 안 터져 연락도 하기 힘들었다.
할 일 없이 집안에 누워있던 순영이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입었다. 좀 있으면 예배시간이었다.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있겠지. 이지훈이랑 전원우도 있을 거다. 며칠 전 교회 건물이 이사했다. 새로 연 교회 건물도 궁금했다.
교회건물은 정말 삐까번쩍했다. 통유리로 된 건물이었는데 그냥 직사각형의 건물이 아닌 외벽이 둥근 곡선이었다. 유명 외국 건축물을 카피했다고 전원우가 비웃던 게 문득 생각났다. 그래 봐야 와종골 마을 사람 중에 저게 카핀지 뭔지 신경 쓸 인간은 없었지만. 순영이 건물 앞에서 고개를 들고 우아하고 소리를 냈다. 꼭 커다란 어항처럼 보이기도 했다. 노란 머리 안에서 피어싱이 달랑거렸다. 순영은 얌전히 피어싱을 빼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3층 예배실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보였다. 마른 옆구리론 선명한 갈비뼈 자국이 보이고 숙인 고개가 처연했다. 머리카락이 물어 젖은 듯 축 늘어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예수 조각에선 왜인지 물비린내가 나서 불쾌했다. 순영은 십자가에서 눈을 떼고 창가로 가 밖을 보았다. 지대가 높아서 와종골이 한눈에 다 보였다. 시퍼런 슬레이트 지붕이 누리끼리한 마을에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밑으로 지훈과 원우가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예배가 곧 시작이었다. 순영은 자리에 앉는 대신 예배실 밖을 나갔다.
지훈과 원우는 11년 전 그날처럼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음식과 옷가지가 가득 든 배낭을 짊어진 원우와 지훈은 말없이 거친 숨만 내쉬었다. 와종골 이 씨 무당집 지하엔 화장실이 딸린 방 한 칸짜리 작은 지하실이 있었다.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물탱크가 있고 불을 땔 수 있는 공간으로 몇십 년 전 처녀 무당, 그러니까 지훈의 외할머니가 죽기 전에 만들어 둔 공간이었다.
지훈은 더 이상 귀신이 보이거나 목소릴 듣진 않지만 두세 달 주기로 예지몽을 꿨다. 원우는 여전히 자기 어깨 위에 가족들이 보였다. 다만 예전처럼 끔찍한 형상은 아니었고 3명 중 1명만이 남아있었다. 지훈은 그게 널 수호해주려고 거기있는 거라고 했지만 원우는 그걸 끔찍히 싫어했다. 지훈은 몇 달 전부터 같은 꿈을 꿨다. 와종골이 거대한 어항이 되는 꿈이었다. 허파가 달린 것들은 모조리 뻐끔뻐끔 마지막 산소를 뱉으며 죽어버릴 것이다. 지하실이 물로부터 안전한지는 원우도 지훈도 몰랐다. 다만 원우의 어깨 위의 그것이 원우가 그곳에 있기를 원했기에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지훈은 순영을 데려오길 원했다. 순영을 살리고 싶었다. 원우는 싫어했다. 걔는 괴로울 거야, "지훈아 걔는 우리랑 달라."
"내가 니들이랑 뭐가 다른데?"
순영이 기쁜 순을 내쉬며 물었다.
"뭐야, 어떻게 알고 왔어"
"교회에서 니들 나가는 거 보고 따라왔는데, 근데 둘 다 웬일이냐? 예배 시간엔 꼬박꼬박 나가는 애들이?"
원우가 혀를 찼다. 지하실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지훈을 꼬셔서 권순영을 부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 교회 안에서 뒤지든지 말든지. 알게 뭐란 말인가. 이지훈이 답지도 않게 권순영한테 절절거리는 꼴이 뭣 같아 깔아놓은 밑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생겼다.
"우리는 이지훈네 집에 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24시간 동안 안 나올 거야"
"뭐?"
"야 전원우"
순영이 반문하고 지훈이 원우의 팔을 끌었다.
"왜 그럼 말도 안 해주고 얠 데려가려 그랬어 그때처럼? 최소한의 선택권도 없이?"
원우가 자훈에게 공격적으로 묻는다. 원우를 붙잡은 지훈의 팔에서 손이 빠진다. 지훈의 표정이 흐려진다. 원우도 순영도 저 얼굴을 알았다. 상처받은 얼굴. 그치만 원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처럼 순영에게 언질도 없이 그를 데려갔다가 제가 그런 것처럼 순영이 지훈을 원망하면 그땐 지훈도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순영이 아니어도 살아남은 후부터는 생지옥일 게 뻔한데 지훈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원우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지훈을 위해서야 어쩔 수 없어.
"무슨 소리냐고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순영의 표정이 멍했다. 자신이 물으면서도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었을 거다. 이미 와종골에선 귀신에 씐 8살 이지훈 때문에 전원우네 가족이 몰살했다는 얼토당토 없는 소문이 파다했으니까 권순영도 몰랐을 리 없었다. 애초에 눈치 없는 척 굴어도 눈치 없는 애가 아니었으니.
"우리 가족이 죽어? 무슨 일 나? 이지훈, 이젠 안 보인댔잖아."
"그래 안 보여"
얼어있는 지훈 대신 원우가 대답했다.
"이제 볼 미래가 없어서 안 보인다고. 다 뒤지는데 뭐가 보이겠어. 오늘 밤에 비가 오고 댐이 터질 거야 와종골만 그런 게 아닐 거고 그 후는 몰라 이지훈도 안 보인다 그러고 우리 누나도 모르겠대"
목장에 소와 돼지가 떼로 죽고, 산에선 고라니 사체가 쓸려오고, 날던 새는 추락사했다. 날이 추운데 눈은 커녕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전화와 인터넷은 듬성듬성 끊겼다. 지금도 산 아래로 내려가면 무릎까지 물이 들어차 있어 차도 못 다닌다. 권순영이 제 죽은 누나를 들먹이며 하는 전원우의 말을 그저 헛소리로 흘려 듣지 못하는 이유였다. 순영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왜 알리지 않아? 사, 사람들한테 말해야지. 야 전원우 지금 당장 교회로 가서 목사님한테 말하고, 또 우리 엄마 아빠한테도 말하고 누나한테도…….
"우리가 왜?"
"뭐?"
원우가 비뚤게 웃었다. 지훈이 마른세수를 했다.
"순영아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좁은 와종골 안에서 이지훈과 전원우가 어떻게 살아왔던가. 귀신 새끼. 염치도 없이 혼자 살아남은 새끼. 귀신 씐 놈들. 미친놈들. 부정 탈 것들. 소름 끼치는 새끼들. 천애고아새끼. 친구라곤 단둘이었고 그마저도 붙어 다니는 전원우와 이지훈에게 손가락질하던 마을 어른들, 학교 학생들, 선생들. 권순영도 와종골에서 나 와종골에서 자랐으니 모르지 않았다. 저 둘의 유대감이 썩어 문드러진 속에서부터 시작됐음을.
"어쩔래? 권순영. 이지훈은 너를 살리고 싶대. 난 니가 죽든 말든 상관없어. 올 거야 말 거야 지금 정해"
"안 가"
"권순영"
"당장 교회로 가서 알릴 거야"
"니 말을 누가 믿는데?"
돌아서려던 순영의 발이 멈췄다. 지훈이 순영의 손을 잡았다. 너 오늘 밤까지 지하실로 못 들어 오면 너도 죽어. 순영이 지훈의 팔을 뿌리쳤다. 웃기지 마, 어차피 진짜 마을이 잠긴다는 보장도 없잖아? 니들이 대체 뭘 봤다는 건데? 내가,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마찰음과 함께 순영의 뺨이 돌아갔다. 원우가 순영의 뺨만큼 달아오른 제 손바닥을 문지르며 욕을 씹어 뱉는다. 씨발 이 새끼 이럴 줄 알았어. 이 새끼가 저 교회에 처박혀 있는 와종골 인간들이랑 뭐가 다른데? 이 새끼 살려 두면? 그럼 더 좆같이 굴걸? 널 원망할 거야 이지훈. 왜 자길 살려뒀냐고 왜 다른 사람들은 죽게 나뒀냐고 널 또 살인자 취급할걸? 그땐 감당할 수 있겠어? 나 때보다 더 힘들 걸? 바깥 상황도 지옥일 거고 또 너도……. 니가 좋아 죽겠는 새끼한테 그런 말 듣고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 수 있겠어?
지훈과 원우가 시선을 맞췄다. 순영이 멍하게 원우의 말을 곱씹었다.
"상관없어 지금 못 살리면 더 후회할 거야."
"이지훈 진짜 끝까지 좆 같이 구냐"
원우가 탄식했다. 지훈은 순영을 어깨를 붙들었다.
"야 다시 말해 갈 거야 말 거야"
지하실 안은 이미 하루 정도가 아니라 적어도 이주는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생필품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장판 위에 나란히 놓여있는 침낭 두 개 옆으로 순영이 제 몫에 침낭을 깔았다. 위에서 지훈과 원우가 집 안의 물건 중 쓸만한 걸 고르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순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니네 엄마는? 멈짓한 지훈 대신 원우가 대답했다. 지금 교회에서 두 손 모으고 예수새끼한테 기도하고 계시겠지. 아……. 순영은 왜 지훈이 지훈의 엄마를 설득해 지하실로 모시고 오지 않았는지에 관해 물어 볼까 하다 이내 생각을 접었다. 이지훈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학대의 출처를 알았다. 모르고 싶어도 와종골엔 비밀이 없었으니까. 새삼, 정말 저 둘이 오롯이 서로만을 의지하며 살아왔을 시간이 불쾌했다. 자신이 둘 사이에 끼어든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말 둘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을까? 쟤네는 그냥 친군걸까? 당장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현실감은 들지 않고 쓸데없는 물음이 순영의 머리를 채웠다. 사실 한켠으론 설마, 진짜 다 죽기라도 하겠어? 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냥 지훈네 집에서 캠핑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순영과 지훈이 짐을 모조리 지하실 안에 집어넣고 정리하는 사이 원우는 사온 방수 여러 개를 카메라를 집 벽에다 고정했다. 홍수가 난 후에도 블루투스가 작동할지 모르겠다며 핸드폰으로 카메라 화면을 확인한 원우가 안경을 고쳐 썼다.
"웬 카메라?"
"그럼 저기서 평생 살겠냐? 여긴 지대가 높아서 다른 데보단 물이 금방 빠질 거야 물이 빠지고 나면 나가야지, 그땐 구조 헬기든 뭐든 오지 않겠냐 지하실에선 밖이 전혀 안 보이니까 안에서 확인하려고 설치하긴 하는데, 사실 제대로 작동할진 모르겠다."
"그냥 설명해주면 될 걸 말하는 꼬라지 하곤"
"내가 지금 너한테 친절하게 생겼냐"
욕지거리가 순영의 목까지 차올랐고 지훈이 둘을 불렀다. 야 내려와봐!!!
아…….
지하실로 들어온 순영이 감탄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 노아의 방주도 아니고"
"노아의 방주는 무슨"
넌 어떻게 이 지저분한 시멘트 방을 그런 신성한 거에 비유하냐? 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신성한-이라고 발음하는 목소리가 묘하게 표독스러웠다.
"어떤 병신같은 하느님이 노아의 방주에 게이새끼 3명만 딸랑 집어넣냐 생산성 없게"
원우의 말에 지훈이 다시 킥킥거렸다.
"나가자 들어가기 전에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들어가야지"
지훈이 순영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밥? 니들 뭐 요리할 줄 아냐?"
그럴 리가 있냐? 원우가 편의점 도시락을 흔들었다.
"몸과 피를 떼주는 예수는 없어도 3분 만에 따듯한 밥을 주시는 전자레인지가 아직 돌아가는데 요리는 무슨"
도시락이 전자레인지 안을 빙글빙글 돌 동안 지훈은 이불과 담요를 한아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순영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예배가 끝날 시간이었다. 순영이 입술을 씹으며 밖을 내다봤다. 마을의 작은 집들 위로 안개라도 낀 듯 희뿌연 무언가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 저게 뭐야
야 씨발 들어가, 어? 이지훈!! 지하실 문 열어. 왜? 댐 터진 것 같아. 뭐 벌써? 왜? 몰라 문 열어 얼른 권순영 뭐해 빨리 들어와 야 야 이새끼 왜 이래 야 정신 차리고 들어오라고 야!!!!
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을 뜨자 제일 먼저 흰색 플라스틱 같은 게 덕지덕지 붙은 천장이 들어왔다. 이상한 화학약품 냄새 같은 게 코를 찔렀다. 몸을 일으키고 코를 킁킁거렸다.
"븅신새끼 기절했냐?" 원우가 순영의 다리를 툭툭 쳤다. "뭔 냄새야?" "입구에서 물 샐까 봐 우레탄으로 입구를 다 발라서 그래 우레탄 냄새야." "우레탄…? 이지훈은?" "자."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니 눈으로 봤잖아" "아……."
밖에서 비명 같은 게 들리고 비가 내렸다. 너무 멀고 너무 희미해서 비명이라고 확신할 순 없었다. 귀가 습한 느낌이었고 와종골의 키 작은 건물들이 하나씩 빠른 속도로 물속에 잠기고 있었다. 원우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용케 벽에 아직 붙어있는 카메라가 물이 집어삼킨 집안을 비춘다. 꼭 무중력 상태의 우주처럼 집안의 가구와 옷들이 둥둥 떠다닌다. 다시 자. 원우가 말하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다시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순영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아?
"난 잃을게 쟤 밖에 없거든."
원우가 침낭 속에서 자는 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이 왔다. 지하실 안은 춥고 습했다. 생각보다 일찍 들어오면서 지하실 안을 전혀 정리를 못 했는지 짐과 음식들이 마구잡이로 쌓여있었다. 지훈이 손난로에 데운 삼각김밥을 내밀었다. 권순영 쫄보새끼 기절하지만 않았어도 도시락 들고오는건데. 원우가 삼각김밥을 들고 투덜거렸다. 그 후 셋은 말없이 삼각김밥을 해치우고 지하실 정리를 시작했다.
대체 언제 다 가져온 건지 각종 인스턴트 음식과 빵과 과자 음료수들이 한가득이었다. 최대한 상하지 않도록 한켠에 쌓아두고 바닥엔 이불과 매트리스를 두툼하게 깔아 편히 잘 공간을 만들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생각이 불쑥 순영을 찾아왔다. 다들 비슷한 상황이었는지 말없이 지하실을 정리했다. 옷가지와 생필품을 정리하던 순영이 손이 멈췄다. 순영의 손에 콘돔박스가 들려있었다. 멍하니 보는데 원우가 박스를 순영의 손에서 가져갔다.
""콘돔 처음 보냐?"
"니들 잤냐?"
화장실 쪽을 정리하던 지훈이 뒤늦게 나와 원우 손의 콘돔박스를 확인했다.
"이쯤에서 정확히 하지? 니들 뭐야?"
"친구"
원우가 대답했다.
"친구랑 있는데 콘돔이 왜 필요하냐?"
순영의 시선이 지훈을 향했다. 이지훈 이렇게까지 날 끌어들였음 나만 멍청한 새끼 만들지 말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뭔지 모를 게 목에 걸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야 진짜로"
"대체 누가 친구랑 콘돔을 쓰는데?"
"그럼, 너랑 난 뭔데 권순영"
지훈이 물었다. 그제야 한켠에 덜컥 걸리는 것이 순영의 눈앞에 불쑥 내밀어진다. 눈을 감을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친구. 우리는 모두 친구다. 섹스를 했든, 콘돔이 필요한 사이건 누가 누굴 좋아하건 셋 중 누구도 관계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기적인 새끼"
지훈이 아닌 원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순영에게 하는 말인지 지훈에게 하는 말인지 혹은 둘 다에게 하는 말인지 불분명하다. 또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 수도.
폐쇄된 공간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지하실에 들어온 지 18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셋 다 말이 없었다. 순영은 찬찬히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지훈은 날 좋아한다. 그래서 날 살렸다. 우리는 섹스를 했다. 그럼 나는? 나는 이지훈을 좋아하나?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자고 싶었다. 이지훈은 분명 권순영의 성욕을 자극하는 면이있었으니. 순영은 또한 지훈을 은근 골때리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애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전원우랑 이지훈은 친구다. 걔들이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인 건 와종골 인간들이 다 알지만 여튼 걔들은 친구다. 그리고 한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이 지하실에 둘 중 누군가, 혹은 서로 합의 하에 콘돔을 들고왔다. 뭐 하자는 거야? 전혀 정리가 안 됐다. 부모님은? 살아 계실까? 마을 사람들은? 교회의 지대가 높으니 거기까지 물이 안 차올랐을 수도 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한참을 각자 따로 떨어져 침묵하고 있었다. 시간이 더럽게 안 갔다. 순영이 뻐근함을 못 참고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는 순영을 빤히 보다 지훈이 물었다. 너는 언제 처음 우리 얘기를 들었어?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원우가 고개를 들어 순영을 바라봤다. 갑자기 집중된 시선에 순영이 벽에 기대앉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일단 이지훈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도 안 나. 하두 옛날부터, 니네 할머니 엄마 너까지 와종골에선 욕받이였잖아." 지훈과 원우가 계속하라는 듯 순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전원우는……. 그 사고가 있고 나서 온 마을에 소문이 퍼졌으니까, 학교에도 그래서 알았지." 순영은 원우의 눈치를 살폈다.
"근데 용케도 이지훈이랑 붙어먹을 생각을 했다?"
원우가 빈정거렸다.
"첨엔 몰랐어. 이지훈이 그 이지훈인지, 우리 학교에 이지훈이 한두명이냐? 어쩐지 내가 책 좀 빌려달라고 말 거는데 애들이 날 이상하게 보더라고 한참 뒤에 알긴 했는데 그땐 이미 쟤가 이상한 인간이 아니란 건 안 후였고, 그게 다야"
그 뒤로 비슷한 대화들이 오갔다. 주로 서로 몰랐던 이야기나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한 질문들이었다. 원우가 제 어깨에 누나가 있어서 늘 등이 구부정할 수밖에 없단 이야길 할 때쯤엔 순영은 벌벌 덜리는 손을 담요에 칭칭 두르고 지훈 옆에 붙어있었다.
셋은 가장 상하기 쉬운 음식부터 먹었고 떠들고 잠깐씩 잠들기를 반복했다. 애초에 하루면 빠질 줄 알았던 물이 48시간이 다 되어 서야 다 빠졌다. 의자 위로 올라가 지훈이 망치로 천장 입구에 발린 우레탄을 부쉈다. 입구의 쇠문을 열고 나가자 지하실로 물이 흘렀다. 의자를 밟고 밖으로 나오니 카메라를 통해 본 모습보다 집 안이 엉망이었다. 셋은 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집 앞에 나무들이 쓰러져있어 마을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어디로 가지?"
지훈의 목소리가 울렸다. 순영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여기 산 사람은 셋밖에 없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지나치게 주위가 조용했다.
"교회로 가자 지대가 높으니깐 교회 옥상 같은데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이런 건 꿈에서 못 봤어?"
순영의 질문에 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내가 물에 잠기는 거였다니깐.
교회를 왜 하필 곡선의 통유리로 만든 걸까? 멀리서 본 교회 안에 물이 3분의 2쯤 차있었다.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것들이 시체라고 생각하니 순영은 속이 거북했다.
"꼭 거대한 어항 같네"
지훈의 말에 결국 순영이 웩 소릴 내며 속에 든 걸 전부 게워냈다. 원우가 인상 쓰며 코를 막았다. 끔찍해 끔찍해 순영이 반복해 말했다. 다 죽었을까? 죽었겠지?
"저 중에 물에서 숨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는 한."
원우가 물이 묻은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울 작은 아빠가 걷은 성금으로 건물을 사는 게 아니라 산소 탱크를 샀으면 됐을 텐데.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지 필요한 말만 골라 듣고 정작 필요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주고."
원우의 말에 지훈이 말을 보탰다. 주님이 아니라 나를 섬겼으면 안 뒤 졌을 텐데 그치.
순영은 그런 한가로운 농담이 나오질 않았다. 눈에 물기가 찼다. 지훈은 결국 울음 터트리는 순영을 껴안아 토닥였다. 원우가 비뚤게 웃으며 그 꼴을 본다. 저 새끼를 살리는 게 아니었지. 지훈은 그저 눈을 감았다. 괜찮아 순영아, 괜찮아.
"구조 헬기가 뜰까?"
"글쎄 라디오도 전혀 안 잡히는 것 봐서는 잘 모르겠네."
"저건 어떡하지?"
지훈이 물이 넘실거리는 교회를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우리가 꼭 어떡해 해야 되는 것도 아니잖아?"
원우가 지훈의 말에 답하며 한걸음 물러난다. 대체적으로 엉망이다. 원우는 생각했다. 저 시체가 뻐끔거리는 거대한 어항도, 이지훈 옆에 매달려 우는 혹도, 그걸 안쓰러워 죽을 거 같은 얼굴로 보고 있는 이지훈도, 전원우의 속도. 오른쪽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은 조금 전부터 느껴지지 않았다. 눈만 오른쪽으로 굴리니 멀찍이서 누나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뻐끔 뻐끔 누나가 입을 벌려 무언가를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 원우에게 닥친 지옥은 오롯이 시각적 지옥이었기에 말이 들리지 않았다. 원우가 안경을 고쳐 쓰고 입 모양을 들여다본다.
ㄷ...다만?해봤자 ㅅ..소용 ..없..없어?
뭐가? 원우가 인상을 쓰고 되물었다. 대체 뭐가? 누나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 원우의 안경으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순식간에 쏴아아….
권순영이 벌떡 일어난다. 이지훈이 달려온다. 거대한 어항 위로 물이 쏟아진다. 머리 아플 정도로 역한 시체 냄새가 사위를 메운다. 아직 물이 빠지지 않은 곳에 검게 고여있던 물 위로 파동이 생긴다. 물의 표면이 흔들렸다. 고개를 들자 아주, 아주 커다란 파도가 오고 있었다. 아…. 다만이 아니라,
도망, 도망쳐봤자 소용없어.
아……. 화가 났다. 아니 원망? 혹은 질투나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이지훈한테 말을 못했는데…….
원망해서 미안하다고.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한 말들은 니가 권순영한테 또 상처받지 않았음 해서 그래서 한 말이었다고 또, 또 내가 너였어도 너를 살렸을 거라고 그리고 또 니가 그날 교회에서 너도 모른다는 그 감정 나는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고 나 알다 못해 넘치는데 이 와종골을 메운 물보다 더 이제 숨통을 막을 저 물보다 넘쳤는데 나도 그냥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니가 안 다쳤음 좋겠고 너랑 같이 있고 싶었고 그래서 권순영이 싫었는데. 또 그리고 좆같은 와종골에서 날 살린 게 너라서 내 옆에서 나랑 같이 목이 졸리며 사는 게 너여서 좋았다고. 참 병신같지 너는 걔 옆에 있음 행복할지도 모르는데 결국 난 널 못 살리는 걸까 너랑 닿기만 해도 좋고 니가 만지는 모든 곳이 화상 입은 것처럼 고통스러울 정도로 사랑스러운데 그게 무서워서 나한텐 너 하나 있는데 너한텐 아니니까 정말내가너를시발예수라도된듯맹목적으로섬길까봐그래서니가부담스러워할까봐차마말하지못했다고아직너한테전해야할말이많은데하다못해사ㄹ…….
죽음 뒤에 뭔가 있을까. 원우의 허파에 물이 들어찬다.
이제야 와종(窪終)골에 완벽히 종말이 고였다.
窪:웅덩이 와
終:마칠 종
와종골: 종말이 고이는 곳
탐라에서 작게 아포칼립스 합작했었는데 그때 쓴 글이애용